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오늘은 나, 내일은 너! / 정현희 수녀

정현희 수녀(‘꿈사리공동체’ 시설장)
입력일 2020-11-03 수정일 2020-11-04 발행일 2020-11-08 제 321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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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무나도 삶과 가까운 나라 북한에서 어렸을 때 가난과 사고로, 병으로 부모님 모두를 잃은 아이들이 많아 명절이면 제사는 필수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하지 못한 효도를 조금이나마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식 중 자기가 부모님께 가장 맛난 것을 많이 차려드린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모님도 자신들이 한국에서 잘 살기를 빌고 계심을 그 순간만큼은 느끼기에 다른 때는 못 와도 명절 때는 꿈사리공동체에 꼭 와서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해 중 꿈사리공동체가 가장 시끌벅적대고 온 집안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날은 설과 추석 때다. 퇴소해 혼자 생활하는 자립생들이 명절 연휴가 되면 명절 음식을 하러 모여든다. 외롭게 혼자 있다가 꿈사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 집이구나!’ 하는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고 한다. 삼삼오오 거실에 모여앉아 명절 음식으로 정성스레 북한 송편과 만두를 빚고, 차례상에 올릴 전을 부치며 꿈사리에서 함께 살던 때의 추억과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 북한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꿈사리에 살고 있는 동생들은 자립한 언니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으로 언니들 곁에 바짝 앉아 대학 생활은 어떤지, 직장생활은 힘들지 않은지 등 자신들 미래의 시간에 관해 묻고 또 묻는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듯한 착각과 천국의 한 조각을 엿보는 듯한 황홀함에 잠긴다. 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 음식을 만들고 제사상을 차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요즈음, 제각기 고향과 성이 다 다른 너와 내가 한 가족으로 모여 마음과 웃음 보따리를 나눈다는 것이 마술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꿈사리 가족 모두 깔끔하게 차려입고 제사상을 차려 향을 꽂고 돌아가신 부모, 가족들을 기억하며 술잔을 붓고 정성껏 절을 한다. 그리고 고향에 갈 수 없는 아픔을 마음에 품고 위령기도를 바칠 때면 부모, 형제, 친지와 함께하지 못한 잃어버렸던 시간을 천국의 시계에 맞춘 듯 경건함 속에서 돌아가신 가족들과 고요한 조우를 눈물로 끌어안는다.

이미 우리 아이들은 너무도 많은 죽음을 체험하고,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겪으면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기에 이 순간의 삶이 버거울지라도 삶이 너무도 소중하고 애틋하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 입구에 새겨져있는 ‘HODIE MIHI CRAS TIBI’ 라틴어의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을 묵상하고 죽음이 내 곁에 있음을 되새기며 매일 아이들 가슴속에 사랑과 감사의 꽃을 피워주고 싶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 성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죽음이 우리 삶을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매 순간 다시 태어나는 신비한 은총으로 초대하는 축복이 되기를 기도한다.

정현희 수녀(‘꿈사리공동체’ 시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