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그리운 종소리 / 방지원

방지원(체칠리아) 시인
입력일 2020-10-27 수정일 2020-10-27 발행일 2020-11-01 제 321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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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기차 정거장 앞을 가로막는 산괴山塊/ 한 컷에 담을 수 없는 위용에 주저앉네// 느닷없이 새벽 옷자락 펼치는 목쉰 전설들/ 칠백 년 묵은 혼령들이 치는가/ 온몸 씻어 내리는 최면/ 뼈 마디마디까지 스미는 전율에/ 골목골목 숨을 곳이 없네/ 온통 청아한 빛의 소리에 묻혀/ 지금 죽어도 좋을 그 신비// 사랑하는 이여/ 나는 꼭 이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해야만 하네.

(방지원, ‘쾰른성당의 종소리’)

위의 시는 독일의 쾰른대성당에서의 미사참례를 위해 찾은, 그 성당 앞의 작은 호텔에서, 새벽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성당 종소리를 듣고 쓴 시다.

얼마 전 쾰른 한인본당 설립 50주년 미사를 봉헌한다는 기사를 읽으며, 문득 7년 전 쾰른대성당에서의 미사참례, 그 소중한 추억과 그 웅장한 성당 종소리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기억을 새롭게 떠올려 본다.

본당에서 공경과 일치의 영성체 시간에, 은은하게 스며드는 종소리도 귀하지만, 평생에 처음 듣는 쾰른대성당의 엄청난 종소리는 두렵기까지 해서 당장 여태까지의 잘못을 모두 고백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성령을 받는 뜨거움이 바로 그런 느낌 아닐까도 생각했다. 아침 일찍 미사참례를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새벽잠 끝에 느닷없이 듣는 그 큰 종소리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종소리는 창문 안팎과 골목골목을 채우고, 쾰른을, 온 우주를 채우며, 내 몸을 관통해 영혼을 그분께 데려가려는 듯, 그 자리에 바로 무릎을 꿇게 하는, 은총이었고, 빛이었고, 나를 정화시키는 하느님 음성임이 틀림없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잊게 하는 성스러운 소리의 샤워였다. 하느님 안에서 인간이 숨을 곳이 어디 있는가. 피할 수 없는 그 소리는 마치 천지를 관장하시는, 항상 나를 살피시는 주님의 엄중한 손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함께 여행 중인 딸네 식구들과 미사참례를 했다. 신자들과 관광객으로 가득 찬 미사 시간, 신자들은 미사를 드리고, 관광객들은 조용히 관광하고, 그래도 하나 부산스럽지 않았다. 모두 저마다의 기도로 성가로 주님의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차마 그냥 떠날 수 없어 그다음 미사도 드리고, 일정을 바꿔 이튿날도 미사참례를 했다. 언제 또 갈 수 있으려나,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 같다. 교환교수로 암스테르담에 잠시 머물던 딸네 식구들은 귀국 전 두 번이나 더 쾰른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들도 쾰른대성당에서의 미사참례와 가슴 크게 두근거렸던 종소리를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1248년부터 632년에 걸쳐 건축된,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세계문화유산, 세계 세 번째 규모의 고딕식 건축물의 진수인 쾰른대성당에서, 훌륭한 그림의 제단 장식과 정교한 조각의 기둥들, 신구약 18개 이야기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기적의 성모마리아 예배당, 게로의 십자가, 세 동방박사의 예배당과 유골함 등을 참배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그 ‘성 베드로 종’을 실제로 보았던 일은 내 생애의 큰 축복과 행운이었다.

어수선한 요즘의 전염병 시대, 한동안 성당에서 미사참례도 못 하고 영상매체로 미사참례를 했다. 혼자 미사를 봉헌하시는 본당 신부님의 영상 속 모습이 마치 가톨릭 박해시대의 상황을 보는 듯 조금 슬퍼 보였다. 역시 신부님과 교우들은 성당 안에 함께 있을 때 일체임을 깨달았다. 아직은 마스크를 쓴 채 목마르게 미사를 드리지만 곧 성가 소리, 종소리 한데 어울려 주님을 마음대로 찬양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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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원(체칠리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