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미움과 지나친 자기주장은 이제 그만 / 김형태

김형태(요한),변호사
입력일 2020-10-27 수정일 2020-10-27 발행일 2020-11-01 제 321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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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노란 국화며 붉은 단풍이 마당과 산을 물들여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청춘 시절 가슴 뛰던 노래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고 밤을 새워 가며 읽던 도스토예프스키도 그저 심드렁합니다. 동서고금의 지혜들은 ‘평정한 마음’을 목표 삼았으니 이제 내가 세상사를 달통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요샛말로 나도 꼰대가 돼 버린 건가?

돌아보면 내 또래들은 초중고 때 제국주의 일본 순사 같은 교복에 모자를 쓰고 다녔고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철이 든 고등학생 시절 이후 나름 권위주의 독재정권들에 열심히 ‘아니오’ 하고 외치기를 수십 년. 이제 그런 세월은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말 마음이 늙어 버려서인지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세월 계속돼 온 정치적, 사회적 억압이 차츰 풀려 가면서 모든 이들이 저마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나섭니다. 그동안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일 테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일 심하게 억눌려 있던 계층이 노동, 여성, 청소년 부문입니다.

노동계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30년 세월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만 비정규직과 겉으로는 자영업자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종속돼 있는 택배 노동자 같은 특수고용직 문제 해결이 이제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노사관계가 이 정도라도 안정되기까지에는 서로 간에 극심한 대립과 지나친 주장들이 난무했더랬지요. 그 과정에서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간 노동자들은 또 얼마였나요.

이제 여성, 청소년들을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청소년 인권조례 제정, 미투 운동, 성폭력에 대한 엄격한 처벌 등. 문제해결을 위해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할 과정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지나친 이분법적 공격과 미움이 난무하고, 그래도 지켜야 할 기본마저도 저버리는 모습들이 종종 보입니다.

학생, 청소년들 인권이 존중돼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란 개념이 본래 자기권리 주장의 속성이 있기에 아직 배움 단계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칫 인권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가르치는 교육 자체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습니다. 미완성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제대로 된 지도는 꼭 필요한 거고, 앞으로 닥칠 삶의 고단함을 잘 넘기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규율과 행동 제한은 필요합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커 온 아이들은 일정한 규율을 통해서 자기 절제와 이웃에 대한 배려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수백 년 이어 온 여성들에 대한 억압은 이를 고치려면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남성을 미워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성차별’에서 찾으려는 걸 보면, 자본주의를 타도한다면서 겨우 ‘자본가 개인’들을 끌어다 죽창으로 죽이던 역사가 떠오릅니다.

그래서야 사람들 이기심에 기댄 저 자본주의가 어디 그리 쉽게 무너지겠나요. 그저 남성을 미워하는 것으로야 저 단단한 여성 차별의 벽이 그리 쉽게 무너지겠나요.

요즈음 한창인 낙태죄 폐지운동도 그렇습니다. 원하지 않은 임신과 양육 불가능한 현실이 아무리 답답하다 해도, 공동선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하나의 생명인 태아를 죽이는 걸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본인 스스로에만 미치는 것이고, 태아는 ‘자기 결정권’에서 말하는 ‘자기’에서 벗어나 있는 ‘남’입니다. 국가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낙태에 대해 모른 척 눈 감아 줄 수는 있어도, 대놓고 ‘남’을 죽이라 허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억압에서 해방되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그 길에는 필경 억압의 반작용으로 억압자에 대한 미움과 과도한 자기주장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잘못된 ‘사회체제’를 고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미움과 지나친 자기주장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