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사랑이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0-10-20 수정일 2020-10-20 발행일 2020-10-25 제 321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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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
제1독서 (탈출 22,20-26) 제2독서 (1테살 1,5ㄴ-10) 복음 (마태 22,34-40)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것 모르면 충실한 신앙인이 될 수 없어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고 친교와 일치 이루는 길 걸어가야

오늘은 연중 제30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빛’을 선물로 주시려고 우릴 부르십니다. ‘진리 안에 사랑’으로 자유를 누리게 해주십니다. 사랑의 문화를 가꾸기 위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돕는 소명에 응답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느님은 ‘자비의 얼굴’이십니다(탈출 22,26). 주님께서는 이방인, 과부나 고아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주십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을 보호해주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하고 미소한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테살로니카 교회의 모습을 전합니다(제2독서).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와 형제애를 나누는 삶이 그리스 지역교회(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의 신자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을 기다리는 그들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랑의 교회입니다.

세기 초 이스라엘의 종교단체였던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는 율법의 준수를 지상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가 주님과 부활 논쟁 끝에 말문이 막혔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파가 한데 모였습니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대표로 주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합니다. “스승님,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유다 율법(모세 오경, 토라)에 기록된 계명에 밝은 율법 학자가 이런 질문을 하다니요? 바리사이파는 토라에 613개의 계명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가운데 행하라는 명령은 우리 몸의 뼈와 장기의 수(248)와 같고, 해서는 안 되는 금령은 한해의 날 수(365)와 같답니다. 어느 누가 이들 계명의 법정신과 상대적 중요성을 알고 기억하겠습니까?

에른스트 짐머만 ‘토론 중인 예수’ (1900)

율법 교사의 질문에 주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 사랑’(신명 6,5)입니다. 둘째 계명인 ‘이웃사랑’(레위 19,18)도 이와 같고,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마태 22,40) 하시며 정설을 펴십니다.

문제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양한 인간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입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십계명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이는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공동체 생활의 근본 규칙입니다. 초기 교회의 모습에서 보듯이 신앙의 조상들은 그룹 중심으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느님의 이미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모른 채 충실한 신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교회의 성사와 기도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친교 속에 한 분이신 것처럼 기도와 성사로 친교를 이루는 우리의 삶에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보답하라고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이웃사랑은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이웃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9)입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마태 5,17)입니다. 사랑의 손길이 이웃에 따뜻이 전해질 때 사랑은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루카 10,29 이하)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생 여정에서 주님께서 만나게 해주시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이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 중에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웃사랑의 기준은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많은 사람이 참된 자신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존심의 결여나 열등의식, 자기학대나 비하와 증오도 문제이지만,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매사에 자기 것만 챙기는 탐욕과 일등에 집착하는 ‘자기중심’에 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묵상집 「사랑」을 읽고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예의 바른 행동이고, 이웃을 소유하지 않고 자유롭게 해줍니다. 우상에 사랑을 빼앗기지 않고 이웃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희생이며, 마음의 문을 열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용서하고 화해합니다. 사랑은 영원하기에 인내하는 가운데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성덕의 길로 나아가는 여정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2 코린 6,16)입니다. 기도와 성사로 사랑의 계단을 오르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내려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