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 토론회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10-05 수정일 2020-10-06 발행일 2020-10-11 제 321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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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으로 인간의 존엄 지킬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
자본·기술 같은 객관적 결과보다 활동 자체로 우위에 있는 인간 노동
재화의 보편적 목적으로도 이어져
고용과 실업 반복되는 노동 위기
고용안정 확보와 불평등 해소 시급
새로운 노동 형태의 증가에 따른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확대 필요

9월 22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포스트 코로나와 4차 혁명 시대에서 교회의 노동 이해’를 주제로 열린 주교회의 노동사목소위원회 토론회에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배기현 주교) 노동사목소위원회는 9월 22일 오후 2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포스트 코로나와 4차 혁명 시대에서 교회의 노동 이해’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소위원회로 승격된 지 3년 만에 열린 첫 토론회라 의미가 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 소외 문제 앞에서 교회는 어떠한 말을 건넬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배기현 주교는 여는 말에서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기술 혁신 시대에 노동은 또 다른 ‘새로운 사태’를 맞이한 것”이라며 “교회는 모든 인간의 존엄함이 지켜지는 중요한 방법이 노동에 있음을 선포해 왔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노동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고찰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교회가 가르치는 노동 개념을 중심으로 오늘날 노동이 갖는 의미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토론회를 통해 살펴 본다.

■ 발제-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에서 노동의 의미와 우위성

교회의 사회교리는 노동을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 토론회 발제를 맡은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이동화 신부는 노동과 관련한 교회 가르침은 두 단계로 나눠진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단계는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부터 비오 11세 교황 회칙 「사십주년」까지이며, 두 번째 단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노동하는 인간」까지다.

곧 산업혁명 이후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인 1960년대를 전후한 시점까지는 노동자의 권리에 무게를 뒀다면, 그 이후에는 노동이 가지는 인간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통해 보다 깊은 노동 이해를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두 단계의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 ‘노동 우위성’ 개념을 드러냈다. 즉 기술, 자본, 도구 등 인간 활동의 객관적 결과보다 노동의 주체로서 자기완성을 이루는 인간 활동 자체가 더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그 반대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개념은 자본에 대한 노동 우위성으로 이어지며 사유재산에 대한 재화의 보편적 목적 우위성으로 연결된다.

“인류 최초 노동은 하느님 창조 활동입니다. 「사목헌장」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풍부히 돌아가야 합니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 사유재산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신부는 이러한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오늘날 노동이 갖는 의미를 밝혔다. 그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면서 실업문제 등 인간 소외 현상이 드러나는데 이는 노동시간 재분배와 노동의 외연 확장, 즉 사회적 재분배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의하면 공정한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의 임금이다”면서 “이는 시장에서 임금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제공하는 ‘기본소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부는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적 조처는 노동이 갖는 인격적이고 주관적인 성격을 회복할 수 있고,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인간의 자기완성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 22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포스트 코로나와 4차 혁명 시대에서 교회의 노동 이해’를 주제로 열린 주교회의 노동사목소위원회 토론회에서 한국공인노무사회 박영기 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토론

이어진 토론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시기에 드러난 노동 위기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과 과제를 모색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박영기(요한 사도)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사람 정신적인 두뇌까지 대체하는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로 인해 ▲무한 경쟁과 양극화 ▲개인화 및 연대 약화 ▲고용 없는 성장 등이 드러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인간 존엄성을 기본 원리로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기업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고용주와 사업주가 특정되지 않는 산업이 늘어나 고용과 실업이 수시로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는 등 고용안전성을 보장해야 할 국가 역할도 제안했다.

‘코로나19 시기 노동 위기와 사회적 과제’를 발표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간호사, 돌봄 서비스 제공자, 경찰 등 필수 노동자이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해고당하고 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이주노동자와 같은 잊힌 노동자 등 4개 계층이 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4개 계층 중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를 제외한 사회적 소외 계층을 어떻게 보호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것인가가 코로나19 시대 과제”라고 밝혔다.

주교회의 노동사목소위원회 총무 정수용 신부는 이동화 신부 발제 내용에 대한 사목적 제안을 덧붙였다. 정 신부는 “교회 역시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사고를 한다”며 “효율 극대화라는 이름 앞에서 교회가 가르치는 노동 개념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유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고 특히 사목자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가 가져올 고통은 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겪을 것”이라며 “누가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지 누가 가장 소외됐는지 살펴보고 우선적 선택을 할 때, 하느님 창조질서로서 인간 노동이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종합토론

질의응답과 종합토론 시간에는 국가 역할을 더 심도 있게 고찰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주의 제도의 핵심은 제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통적인 노동자나 자영업자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 또는 ‘특수형태고용 종사자’등 새로운 노동 형태가 늘어남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등 인간 중심으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 역시 “이제는 국가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라며 “기본소득 문제 등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공감했다.

청년 고용 문제도 대두됐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한국사회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잘 안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만 19세가 되면 공부, 창업을 위한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기초자산제를 통해 ‘출발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소시민 역할에 대해 정 신부는 “사회를 움직이고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치인들 문제만이 아니다”면서 “공적인 이익이 자신의 가치와 대립되지 않도록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민 의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한편 양극화 심화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 받는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 역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