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36) 보고 싶고 그리운 우리 아버지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0-09-08 수정일 2020-09-08 발행일 2020-09-13 제 321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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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그 긴 시간 직접 보여 주시고 착한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나신 친정아버지…

올해 추석이면 친정아버지께서 선종하신 지 1년이 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4남매에게 늘 개방적이셨고 우리들의 선택들을 항상 존중해 주셨다.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대우만 받고 자라신 아버지셨기에 친정어머니께서는 일평생을 그 곁에서 그림자처럼 눈물로 아버지를 모시고 사셨다.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어떻게 매달 병원에서 수혈을 받고 또 지병이 심해지셨을 때마다 수시로 입원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면 하느님께서 참 좋은 시절에 아버지를 데리고 가신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주님의 자비하심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17년 전 아버지는 심근 경색과 심부전으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으셨고, 우리 남매는 자식으로서 후회 없는 시간이 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병원에 모시고 가 아버지께서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한 달이 넘는 기간을 매일 같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아버지를 뵈러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언니와 오빠는 바쁜 직장 생활로 시간을 내지 못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고, 나는 매일 병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는 역할을 맡았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바쁘게 어린이집 일과를 준비해 놓고 공항으로 갈 때마다 주님께 애타게 부르짖었다.

“주님! 제가 없는 어린이집을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하지 않고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을 주십시오. 그 은총을 허락하신다면 주신 그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주님의 일꾼으로서 또한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딸로서 살겠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하고 서울을 오가며 얼마나 간절히 눈물로 하느님께 매달렸는지…. 그 간절함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직장과 관련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은총을 허락하셨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나는 시간이 흘러 주님의 작은 일꾼이 되고자 꾸르실료 봉사와 본당 전례 봉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정아버지의 병간호를 계기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 간절함이 기도로 변해 주님께서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셨기에 오늘따라 유난히 아버지가 보고 싶다.

17년을 덤으로 살고 계신다고 했던 친정아버지께서 심부전으로 숨쉬기가 힘들어 마음이 많이 우울하실 때, 우리 자매가 함께 봉사 들어가야 하는 차수가 가끔 있었다. 봉사를 들어가기 전 아버지께 가서 “3박4일 꾸르실료 봉사 갔다가 올게요. 그동안 식사도 잘하시고 기도도 하시고 계시면 아버지 딸 둘이 하느님 일꾼으로 잘 쓰이고, 아버지 기도도 많이 하고 올게요”라고 인사드리면 아버지께서는 “부모가 이렇게 아픈데 어딜 봉사를 가냐”며 화를 내셨는데,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는 “왜 요즘은 꾸르실료 봉사 안 가느냐. 가서 아버지 고통 없이 잘 죽을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하고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딸로 사는 막내 수녀님과 우리 딸들이 세상 재미에 빠지지 않고 이렇게 봉사하면서 사는 걸 보니 참 대견하다”며 흡족해 하셨다.

그렇게 변해 간 아버지는 당신 방식의 묵주 기도와 죽음을 위한 기도, 자비의 기도를 드리면서 자식들이 바치는 기도를 위안 삼아 기약 없는 착한 죽음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면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가셔서 젊은 날 엄마에게 못한 것들을 보속이라도 하듯이 엄마가 좋아하시는 간식들을 사다 나르셨다. 어느 날은 큰언니가 좋아하는 빵과 내가 좋아하는 즉석 쌀 튀밥을 사 가지고 오셔서는 함박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 먹먹하게 떠오른다.

이렇듯 ‘육신의 부모도 당신이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해 주시려 애를 쓰시는데 하늘에 계신 나의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소중하실까’하는 마음이 들면서 또 필요 없는 것들로 채워져 가는 나를 돌아보면서 움켜잡고 있는 것들을 버리려 한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그 긴 시간 당신께서 직접 보여 주시고 착한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나신 친정아버지…. 당신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사랑의 주님께 저를 봉헌합니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