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50) 자연에서 얻은 교훈 (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9-01 수정일 2020-09-01 발행일 2020-09-06 제 321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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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초, 은인으로부터 작은 화분에 담긴 철쭉 스물다섯 그루를 봉헌 받았습니다. 연분홍색 몽우리가 올망졸망, 초록 이파리들은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은지! 그런데 온실에서 이제 막 기지개를 켠, 귀하게 자란 철쭉이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를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철쭉나무는 4월 중순은 잘 견뎌내, 4월 말부터는 성지 마당에 내놓고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연분홍색 철쭉꽃은 본당 교우들과 성지를 찾는 순례 객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었지만, 피고 지는 것은 세상 모든 꽃들의 운명이라….

그렇게 철쭉꽃이 다 지고 나니 화분 속 덩그러니 남아있는 철쭉나무가 어찌나 왜소하고 기운 없어 보이던지. 설상가상으로 꽃이 없는 철쭉나무 화분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며 한 마디씩 거듭니다.

“신부님, 온실에서 자란 꽃나무들은 오래 살지 못해요.”

“이제 철쭉꽃도 다 졌는데, 이 화분들은 처리하시죠.”

“‘이제는 뭐, 볼품도 없는데 그냥 치우세요.”

하지만 우리 본당 교우들 마음에 아늑함을 선물로 준 녀석들이라, 죽더라도 끝까지 잘 돌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가만히 보니, 철쭉꽃들이 지고 난 자리 근처에 좁쌀 크기의 작은 꽃 몽우리들이 한 두 개씩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아직 몽우리가 있네.’ 그래서 철쭉나무 화분에 계속해서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가끔씩 철쭉나무에서 한 송이씩,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어찌나 깜찍하던지….

그렇게 5월이 가고, 6월이 오고! 성지 마당 한 가운데 있는 키 작은 철쭉나무는 잘 자라서 나무로서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6월의 장맛비를 경험하고, 7월 초 뜨거운 태양마저 거뜬히 맞던 철쭉나무는 어엿한 나무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철쭉나무를 돌보던 순간! 내 시선이 어떤 장소 한 군데에 꽂혔습니다. 그곳은 성지 내 주문모 신부님의 흉상이었습니다. 사실 그 쪽은 원래 잔디밭이었는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곳으로 변해 볼품이 없어졌습니다. 바로 그 곳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조경사 형제님께 화분 이식에 관해 문의했더니, ‘작은 화분이 잘 자란 철쭉나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주변 땅에 옮겨 심어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고맙게도 조경사 형제님께선 직접 성지에 오셔서 주문모 신부님 흉상 주변에 타원형으로 철쭉나무를 심어주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철쭉나무가 새로 터를 잡은 것을 보니, 주문모 신부님 흉상 주변까지 아늑하고 안정감 있어 보였습니다. 한 순간,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실에 자란 꽃나무들은 쉽게 시들어버린다!’ 예, 그 말 맞습니다. ‘온실에서 자란 꽃나무들은 꽃들이 피고 지면 이내 곧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화분은 처리하지 못해 힘들 수 있다.’ 예,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생명이 있는 것을 귀하고 소중하게 다룬다면, 생명이 있는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귀하고, 소중한 곳에서 자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케 됩니다. 연분홍색 철쭉나무, 처음에는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나무가 원래는 주문모 신부님 흉상 주변에 작은 화원을 이룰 꽃나무였지 않을까! 어쩌면 이 사실은 나만 몰랐지, 하느님께선 다 알고 계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자신의 화려한 인생이 다 끝났다고, 지금 자신의 모습은 볼품없다고 말하는 분들 모두에게! 하느님은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뜻,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귀하고 소중하게 쓰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진심, 하느님 섭리 안에 나를 성실하게 내놓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