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즐거운 것 행복한 것 / 황소희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입력일 2020-08-11 수정일 2020-08-11 발행일 2020-08-16 제 320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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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외로 북한이 가까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만나게 될 때다.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실수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북한에서 왔다는 말에 연민과 시혜적인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던 적도 있고, 안부를 묻겠다는 생각에 남한살이에 적응했냐는 질문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남한 사람들도 여기서 사는 게 참 힘들어 보이고 고달픈 것 같은데 너는 잘 적응해 살고 있냐는 어느 북한이탈 지인의 응답에 불투명한 미래로 하루하루 낙담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아차 싶었다.

북한이탈주민 중 제3국으로 이동하거나 탈북할 때부터 다른 국가를 선택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한 국가에서는 북한이탈주민 타운이 있을 정도다. 특히 영국 뉴몰든 지역은 ‘리틀 평양’이라 불리듯 꽤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모여 사는 동네다. 북한도 남한도 모두 싫었던 이들이 한반도 경계 밖에서 북한 사람의 정체성인 ‘조선민족’을 잃지 않고 확장해 가는 과정을 추적 관찰한 논문들을 읽으며 스스로가 참 많이 오만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남한 사회와 한국 정부만이 이들의 대안이라고 단정했다는 점이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근거 없는 시혜적인 심보와 ‘남한스러워지길’ 바라던 마음도 이 지점에서 비롯했다.

그 후로 북한이탈주민을 호명하는 수식어들이 불편해졌다. 이들에게 부여되는 ‘먼저 온 통일’이라는 정체성은 정책적 리트머스지로 활용하거나 모종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환기시킨다. 민간단체에서도 통일 이후를 대비해 단체의 목적에 맞는 남한 친화적인 북한 엘리트를 선제 양성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통일의 역군’이라고 이들을 호명하며 지원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가. 이들이 탈북한 이유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창대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에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건너왔을 뿐이지만, 지원의 목표와 대가에는 남북한 통합과 통일기반 조성과 같은 거대담론이 따라붙는다.

아마 공식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재입북, 탈남, 제3국 탈북이 더 있을 것이다. ‘탈조선행’으로 불리는 국적포기자도 지난해 2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만큼 남한 사회에 환멸을 느껴 떠나는 이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주는 저마다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북한이탈주민이 스스로 원치 않는 이상, 이들에 대한 지원 목적 내지 배경으로 논의되는 ‘평화통일의 징검다리’와 ‘남북 소통의 연결고리’라는 기대는 강요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이탈주민이 즐겁게 사는 것, 그들이 행복추구권을 향유하는 것, 그것들만으로도 이들을 지원하는 목적과 이유가 충분하다. 이미 성경에서는 우리의 삶에 대해 “인간에게서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나는 알았다”(코헬 3,12)고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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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