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한국천주교회의 유리천장지수는? / 임미정 수녀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입력일 2020-08-11 수정일 2020-08-11 발행일 2020-08-16 제 320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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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의 비유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말한다.
며칠 전 교회의 한 매체를 통해 지난 5월 말에 스위스 프라이부르크 독일어권 대리구에서 여성 평신도를 교구장 대리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한편 프랑스 리옹교구에서도 공석인 대교구장직에 평신도 여성 신학자가 지원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2019년 5월 독일 뮌스터교구의 한 여성단체가 주도한 ‘마리아 2.0운동’이 떠올랐습니다. 이 운동은 ‘여성 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파업 선언’, 즉 교회 봉사활동을 중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5월 11~18일 사이 기존의 교회 봉사활동을 하지 않고, ‘성당 안’이 아닌 ‘성당 앞’에서 전례를 거행하며 이를 홍보했는데, 이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느님 자녀 중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시대에 맞지 않는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호소하며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부르심을 받았고 복음을 선포하는데, 여성들이 교회에 힘 있고 영향력 있게”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기사에서도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의 요구는 “여성들도 자기 소명을 공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유럽의 여성 신자들에게 일어난 소식들을 접하면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여성 수도자로서 한국교회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OECD 국가 중 성차별에 있어 가장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사회(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9 유리천장지수’에서 OECD 국가 중 꼴찌는 대한민국으로, 7년째 최하위를 기록), 거기에 더욱 경사진 한국천주교회 구성원들, 특히 여성 신자들에게 이런 소식은 어떻게 다가갈까요?

2016년 ‘자비의 해’에, 그 사도성이 인정돼 승격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결정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레나를 비롯한 사도시대 여성 제자들로부터 이어진 순교자들, 동정녀들, 대수도원장들, 선교사들, 중세 예언적 신비가들의 교회를 향한 열정과 그 사명 수행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교회역사 기록물들 대부분이 남성에 의한 기록이라 누락되고 사라진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을 거쳐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발굴된 이들의 감춰진 역사를 살펴보면 비록 제도교회와 관계에서 평행선을 그리는 듯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정적 비전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다가갔으며, 주체적 사명으로 교회와 세상을 향해 행동하고 말씀을 설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천주교 전래 당시,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유입된 가톨릭 ‘만인평등사상’은 신분제 타파와 평등한 여성관을 형성하면서 여성 스스로 자기 정체성과 역할을 자각하게 했습니다. 당시 지도력을 발휘한 여성은 강완숙 골룸바를 비롯한 의로운 과부들, 동정녀들, 많은 여성 신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선교 활동의 증거자로서 소명을 다하며, 선교와 교육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교회도 교계제도가 확립되고 성직자 중심으로 제도화되면서 여성 지도자들은 뒤로 사라지게 됩니다. ‘만인평등사상’은 교회 안에서 남녀 모두의 지도력을 펼치게 할 사상적 바탕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지도자의 위치가 늘 남성 성직자에 한정되고 있어 여성 신자나 수도자는 대부분 남성 성직자를 돕기 위한 협조자의 역할로서만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유럽교회의 책임 있는 성직자들 안에서는 최근 여성 신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교회 내 여성 지위에 대한 토론을 촉발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과 교회의 공동합의성에 대한 재고 등을 거론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1990년대에 이런 담론들이 일어났었고, 교구별 시노드를 통한 제도개선과 의식변화 교육에 여성 신학자와 활동가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반복되는 두 가지 벽에 부딪히며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도적, 가부장적 성직주의’와 ‘교회 내 여성의식의 한계’.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맴돌고 있는 이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하느님 백성’으로서 ‘온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책임 있는 지도자들과 남녀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열린 토론을 하며 제도개선에까지 이어지게 하는 실천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성찰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를 자문하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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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