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춘천 죽림동주교좌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개최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6-23 수정일 2020-06-23 발행일 2020-06-28 제 320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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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초석 다진 두 교구장의 사목활동 재조명
초대교구장 구인란 주교 교세 확장·사랑 실천 매진
2대 교구장 박 토마스 주교 가정·생명 수호 위해 노력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6월 21일 열린 ‘구인란 토마스, 박 토마스 주교의 사목활동’ 주제 학술 심포지엄.

‘교세 확장’과 ‘사랑 실천’, ‘가정·생명 사목.’ 춘천교구(이하 교구) 초석을 닦고 성장시킨 초대교구장 구인란(토마스 퀸란) 주교와 제2대 교구장 박 토마스 주교의 핵심 사목 활동은 이 세 가지였다. 이 같은 사실은 6월 21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구인란 토마스, 박 토마스 주교의 사목활동’ 주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올해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교구 죽림동주교좌본당(주임 홍기선 신부)이 마련한 이번 심포지엄은 교구 교회사연구소(소장 김주영 신부)가 주관했다.

이날 수원가톨릭대학교 여진천 신부(원주교구)는 구 주교 사목 활동의 핵심은 “‘교세 증가’와 ‘이웃 돕기 사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구 주교의 활발한 사목으로 본당과 신자 수가 많이 늘었으며 원주교구가 분할했고, 이웃을 위한 사랑 실천으로 주민 복지를 증진시켰다는 의미다. 실제 춘천대목구장 시절인 1958년 구 주교는 대목구 활성화에 힘썼고 그 후 신자 수가 1952년 8619명과 비교해 1958년 2만4281명, 1963년 4만2821명 등으로 크게 증가했다. 의료·교육 활동에서도 1956년 춘천 골롬반 의원, 1961년 삼척 성 요셉 의원, 1964년 강릉 갈바리 의원을 개원하고 1964년 3월 춘천 성심여자대학 문을 여는 등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을 위해 지원했다.

박 주교 사목 활동에 대해 발제한 교구 교회사연구소 이원희(요세피나) 상임 연구원은 박 주교가 “다른 어떤 사업보다 ‘행복한 가정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가정을 지키는 것을 교회의 가장 큰 일로 여기고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을 심히 우려하면서 생명 수호 운동을 일관되게 강조·실천했다는 뜻이다. 실제 가정 성화를 위해 박 주교는 모든 신자 부부들이 혼인 생활 재교육을 받도록 했고, 자연 피임법 보급을 위해 교육자를 양성·파견했다. 미혼모 지원을 위해 1979년 춘천에 착한 목자 수녀회를 초대해 미혼모의 집을 운영하도록 했고, 재임 기간 내내 주교회의 가정 사목 담당 주교로서 전국 모든 교구에 이러한 운동을 확산시키려 했다. 자신의 교구장 수품 25주년 때도 행사 대신 가정 성화, 생명 수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구 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 신호철 신부는 “외국인 성직자가 국가 시책에 반해 공개적으로 성·낙태·피임·생명 등을 언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개의치 않고 사목 방향을 꾸준히 설파하며 발전시켜 나갔다”며 “주교님 이후 이 사목적 유산이 왜 지켜지지 않았는가”하는 데에 “반드시 평가·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구 교회사연구소장 김주영 신부는 “두 주교님 사목 활동을 돌아보면서 우리도 삶 속에서 두 분처럼 잘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구인란 주교와 박 토마스 주교

1896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구인란 주교는 1918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 입회해, 1920년 2월 2일 사제품을 받았다. 1938년 11월 14일 춘천에 부임했고, 춘천지목구장 대리와 제2·4대 지목구장, 초대 대목구장, 초대 교구장 등을 역임했다. 죽림동주교좌본당 제6대 주임을 지냈고, 1970년 12월 31일 선종해 현재 죽림동주교좌성당 뒤편 성직자 묘지에 안장돼 있다.

1925년 아일랜드 출생인 박 토마스 주교는 1944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 입회했다. 1950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았고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했다. 1954년 교회법 박사 학위를 땄고, 당시 한국 교회에선 흔치 않은 박사 학위를 받은 신부라 하여 ‘박사 신부’로 불리다 ‘박’씨 성을 가지게 됐다. 1956년 원주교구(당시 춘천대목구) 횡성본당 보좌로 활동하며 춘천교구와 연을 맺었고, 춘천대목구 총대리 등을 역임했다. 1963년 교구 상서국장, 1965년 교구 총대리 겸 상서국장으로 구 주교를 도와 교구 발전 토대를 마련했고, 1966년 2월 12일 제2대 교구장으로 임명됐다. 1994년 은퇴 후 본국으로 돌아간 박 주교는 그해 10월 30일 선종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