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10 / 이중교 신부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0-06-16 수정일 2020-06-16 발행일 2020-06-21 제 320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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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생님께서 인터뷰 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알코올중독자가 가야 할 길은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산 아니면 AA모임입니다.”

산은 무덤이다. 그리고 AA는 병원 밖 현실에서 그들의 중독을 멈춰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길이다. 그들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독을 만나야 한다. 중독을 만났기 때문에 중독과의 만남을 평생 단절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알코올중독자들이 같은 중독자들을 만나는 AA모임에서 그들은 깨닫는다.

‘나만 밑바닥을 쳐 본줄 알았는데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하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나. 에휴. 한심한 놈. 어라? 가만 듣고 보니 내 이야기인가.’

‘그렇지. 가족 때문에 너도 단주를 결심했구나. 잘했네. 네가 할 수 없으면 가족 얼굴이라도 봐서 제발 술 좀 끊어라. 물론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신? 하느님? 그런 거 믿지 않지만 이건 사람 힘으로는 절대 못 끊어. 절대 사람 힘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중독이란 무서운 힘을 그들이 멈출 수 있는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그 무서운 힘을 멈추지 않으면 사랑하는 이들을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들은 오늘도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지긋지긋한 중독과의 만남이지만 평생 끊을 수 없는 중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종종 그들을 만나러 AA모임에 참석하고 싶다. 그들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언제든 내가 가기만 하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의 삶을 들을 수 있다. 만약 그들이 그 자리에 없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다. 재발했거나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술을 완전히 끊어서 이제는 AA모임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애초에 알코올중독자가 아니었다’고 AA모임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확신한다.

악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악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그 악과 맞서지 말아야 한다.(마태 5,39) 그리고 그 악을 피하도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잠시나마 자신에게 다가온 악에 굴복하여 밑바닥을 쳐 본 선생님들 경험을 통해 중독과의 짧았던 만남은 나 역시 짧지 않은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 느낌 속에서 한 가지만은 잊지 말자. 그들이 로만칼라를 착용한 사제를 바라보며 간절히 보냈던 눈빛.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