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화백은 제사발문과 점경을 쓰고 넣기에 시편이 적합해 시편을 표현한 작품을 많이 그린다고.
점점 우리 것이 사라져 가는 풍토는 화단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묵화를 고집하는 하 화백이 말하는 수묵화의 매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선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가 주로 사용하는 종이는 티슈처럼 얇은 당지다.
당지는 물을 쉽게 흡수해 덧칠을 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인데, 하 화백은 이를 두고 “우리 삶과 우리가 내뱉은 말처럼 거둬들일 수 없는 점이 같다”고 말한다.
또한 물을 받아들일 만큼 받아들이고 여백에게 양보하는 것, 은은히 배어나오는 예상할 수 없는 번짐, 생명의 기운처럼 퍼져나가는 후광과 같은 여백의 미 또한 오직 수묵화로만 표현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더욱 작업에 몰두하게 됐다.
“어려운 시기에 예술인이 뭘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어요. 결국 예술가의 사회적 소명이자 정체성은 열심히 기도하면서 얻은, 뭐라 부를 수 없는 창조주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복음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하 화백은 오는 10월 3일부터 6주간 독일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 72점을 모은 초대전을 갖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전시명은 1911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의 한국 여행기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따온 것.
그는 2017년과 2018년 아프리카 토고를 돕는 자선전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열었던 인연으로 이번 초대전을 갖게 됐다.
해마다 오딜리아 연합회 총회가 독일 모원에서 개최되는데 그 시기에 맞춰 하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 수익금은 성 베네딕도회 쿠바 수도원을 위해 쓰인다.
매일 다른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하루의 의미는 남다르다. 어찌 보면 오늘이 어제 같은 비슷한 일상이 지루하게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하 화백은 일상이 가장 소중하다고 힘주어 말하며, 특히 정리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처음부터 갈 곳을 제대로 정해 놓고 가야 올바른 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루도 그렇고, 작업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