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무균실 소식 / 정연순

정연순(에우프라시아) 수필가
입력일 2020-04-27 수정일 2020-04-28 발행일 2020-05-03 제 319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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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렷하면서도 온유한 분위기 그대로다.

“나이 때문에 골수이식도 안 되고 검사결과가 안 좋아 항암제도 안 된대요. 집에 왔어요. 언제 오라 하실는지 모르기로는 다 마찬가지지만 나는 눈앞에 보고 있는 거지요.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생각해요.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까? 알면 아무리 무거운 짐도 참 가벼워질 텐데. 그래서 늘 기도를 드려요. 일생 가장 감사할 일은 세례를 받은 거더라고요. 절대 자기를 잊을 수가 없지요.”

울 뻔했다. 담담한 그녀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병원 감옥살이라도 내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했더니 첫날밤에 옆 침대의 젊은이가 떠나고 며칠 후에는 이쪽 침대의 남자가 떠나는 거예요. 바로 내 모습이죠. 그들을 위해,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하더라구요. 내 나이가 있으니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형제도 노인이라 자기 앞가림도 어려워요. 없어요. 아무도. 누가 있겠어요. 지금은 교우들 사랑 속에 살아요. 축복이다 싶어요. 교우들 기도 덕분에 마음 준비도 잘하고 있어요. 성모님 지켜 주실 거고 예수님 용서해 주실 거라 믿어요.”

가벼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밝은 느낌이 되레 슬펐다. 가슴이 젖고 있었다. 나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을 때 살려만 주신다면 착하게 살겠노라, 주님 뜻대로 살리라 약속하였다. 단순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 했던 나는 그 약속을 변명하고 모른 척하고 비겁할 때도 있지 않은가.

그녀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양근성지로 미사를 가요. 거기는 사람이 적으니까. 마스크 쓰고 무장을 하고요. 전염되는 병은 아니니까요.”

그녀가 처음 입원하는 날 먹을 걸 들고 병원 안내 데스크 앞에 섰지만 이름이 입안에서만 뱅뱅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워낙 세례명이 입에 익은 탓인지, 충격 때문인지 그녀 이름이 완전 삭제된 것 같았다.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이후 면회가 어려웠다. 소독을 해서 전해 준다길래 책과 편지를 보내곤 했을 뿐이다.

“알잖아요. 나 미련한 거.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 맞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이 말도 못해요. 자기 책도, 편지도 보고 또 보고 해요. 다 외워요. 외워.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마음에 있어요. 좀 자주 만날 걸 싶다가도 그랬으면 마음에 이리 깊이 새기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가 안 지 30년이 넘었네요.”

지독한 비참함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경지인가. 오로지 믿고 온전히 내맡기고 이미 무량의 시간, 그 희망을 그녀는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전화를 놓았다. 영화의 엔딩 자막을 멍 바라보며 감동의 여운에 잠겨있는 꼭 그런 기분이었다. 뜨거운 무엇이 너울거리며 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가만히 눈을 감고 오래 그러고 있었다.

선종 소식이 왔다. 성당 영안실 빈소에서 그녀는 꽃을 빙 두르고 액자 속에서 날 바라보며 웃었다. 결국 영정으로 만난 것이다. 슬픔보다 그리움이 더 뜨거웠다. 연도가 끝났지만 하염없이 영정을 바라보며 그녀를 새겼다. 아름다운 여정을 살고 가셨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누구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사랑을 가진 게 확실했다. 그녀 또래 두 자매님이 다가와 내 이름을 대며 “맞으시죠?”한다. 내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느낌이 확 오더란다. 한 권의 말씀으로 오래 기억될 그녀는 일생 닮고 싶어 했던 그분의 나라에 가 있을 거라고 우리는 그녀 이야기를 하였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연순(에우프라시아)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