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코로나19 특집] 한티 피정의 집 생활치료센터 체험 수기

조영이(이레나) 간호사·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센터 부장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5-08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봄이 다가오듯… 완쾌되어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벼랑 끝에 몰린 순간, 기적처럼 나타나신 주님의 손길이 삶을 일으키곤 한다. 코로나19로 혼란한 와중에도 서로를 돕고 격려하는 손길 덕분에 누군가의 삶에 희망이 차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어두운 곳곳을 밝히는 하느님의 은총. 그 기적과 같은 현장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벌레 보듯 하는데 손까지 잡아주시니까...”

한티 피정의 집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중년의 아주머니는 말을 잊지 못하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진단을 받은 것만으로도 속상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죄지은 것 같고, 미안하다”며 혹시라도 의료진에게 옮길까 싶어 처음에는 가까이 오지도 않았던 아주머니.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 방안에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암울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가능하면 그들에게 정서적인 지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루한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등을 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인다. 물론 나는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어 안전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기는 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월 4일 한티 피정의 집 생활치료센터에 자원근무 신청을 했다. 내가 자원 신청을 하고 몇 시간 후에 같이 근무하시는 수녀님도 자원 신청하신 것을 알았다. 자원하기는 했으나 혼자라는 것이 조금은 불안했었는데 수녀님도 함께 하신다고 하니 서로에게 힘이 될 듯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는 5일 오픈하기 전 의료세팅과 의료인력 관리를 부탁해왔기에 출발 일을 미룰 수도 없었다.

생활치료센터로 사용 중인 대구대교구 한티 피정의 집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른 새벽 출발해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해 보니 환자분들이 입소할 방은 준비됐으나 사무공간이나 감염관리 경로 등을 고려한 시설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함께 간 간호 수녀님과 같이 의료 부분 세팅을 위해 환자분들의 이동 경로부터 파악하고 어떻게 이동시킬지를 숙고해 결정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소자분들과 근무자들의 동선이 달라야 하고 근무자들이 꼭 지켜야 하는 감염병 예방수칙과 보호구 착탈의 숙련이 필요해 환자를 직접 대하는 의료인들에게 제일 먼저 보호구 착탈의 교육을 해야만 했다. 착의보다 탈의가 매우 중요해 탈의하면서 스스로 감염원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때문에 숙련될 수 있도록 충분히 연습시키고 방역, 배식, 행정, 경찰 등으로 나눠 보호구 착탈의 훈련을 했다. 첫날부터 며칠 동안은 동선이나 의료물품 등을 세팅하면서 환자도 돌보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분주하였다. 어떻게 하면 환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지지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근무자들의 피로도를 낮출 수 있을까 생각하여 근무자들의 동선을 고려하였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는 의료인만 감염관리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감염관리가 이뤄져야 하기에 근무자들 모두가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호구 착탈의는 잘 이뤄지는지, 책상, 마우스, 키보드, 볼펜, 의자 등 자주 손이 닿는 부분은 자주 소독이 되는지, 생활 안에서 감염관리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였다. 급하게 준비했지만 입소자분들에게 드리는 안내문, 컵라면, 휴지, 세면도구, 물, 커피포트, 커피와 차종류, 소독제, 마스크, 체온계, 소독티슈, 청소용구, 자가체크리스트 등이 꼼꼼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식사는 도시락으로 제공되는데 가족들에게 사진으로 보내주었더니 ‘먹는 것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되겠다’고 할 정도로 잘 나왔다. 보건복지부나 대구광역시에서 준비하는 것도 많았지만 과일, 빵, 떡, 건강보조식품, 일반의약품 등을 각처에서 후원해주는 것들도 많아 필요한 물품이나 먹거리들은 풍족했다.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이 감사하다.

입소한 환자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가족이 같이 확진된 것은 안타까우나 가족이 같이 입소한 분들은 그나마 대화 상대라도 있으니 지내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이 왕성한 젊은이들이 방안에만 있어야 하니 얼마나 갑갑할지 짠한 마음도 들었다. 보호구를 착용하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그들을 대할 때는 조금이라도 지지가 되려고 지루한 일상을 어떻게 지내는지, 방 온도는 괜찮은지 등 일상에 대해 질문을 하고 짧은 시간일지라도 웃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생활치료센터를 오픈하고 9일 만에 첫 퇴소 하는 분들이 있었다. 퇴소하면 일상에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퇴소 절차도 꼼꼼하게 챙겨야 했다. 계시는 동안에도 철저하게 동선이 구분되고 방역을 하루 여섯 번이나 할 뿐만 아니라 의료진 이외는 환자분들과 마주칠 일이 없도록 하였다. 퇴소 전에도 세심한 교육과 사용하던 물건이나 옷, 가방 등 모든 것을 철저하게 소독하고 생활치료센터에서 준비한 새 옷을 입는 등 퇴소절차가 끝나면 헤어캡, 전신가운, 마스크, 클린 장갑, 덧신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는 모두 벗은 후 깨끗한 상태로 차량에 탑승하게 한다. 생활치료센터를 나가는 분들은 연신 ‘감사하다’,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를 하시거나 손편지를 써서 책상위에 얹어두고 가시는 분들의 진심이 느껴져 이곳에 자원해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소하고 나면 방역을 한 후 방이며 침구며 화장실과 같이 환자가 사용했던 모든 장소와 물품은 폐기물로 버리거나 소독을 하고 새로운 물품으로 세팅하는 등 새로 생기는 일이 많지만 청소용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간호 인력이 해야만 했다. 얼굴에 깊은 주름은 기본이고 귀가 헐 정도로 압력이 가해지는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숨이 턱턱 막히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궂은 청소 일을 하고 나와서도 웃으며 서로 격려하는 간호사들이 대견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근무자들의 피로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가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근무표를 매일 바꾸다시피 했다.

생활치료센터 내부. 휴지, 세면도구 등 생필품과 소독제, 마스크, 체온계 등이 꼼꼼하게 준비되어 있다.

방호복을 입고 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 중인 조영이 간호사.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에도 시간은 흘러 음성이 두 번 확인되어 퇴소하는 분도 있지만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도 양성이 나와서 한 달이 넘도록 또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환자분들도 있다. 처음 입소해서는 잘 견뎌 주었지만 퇴소하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을 더 지루하게 생각하고 요구사항도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때로는 불안하여 눈물로 하소연하기까지 하는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어 표현하는 것을 들어주고 작은 요구라도 가능하면 해결해주려고 노력하였다. 수녀님이 함께 계시니 그런 부분들이 더 반영되는 듯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생활을 하면서 확진자를 소외시키고 일상생활조차도 못하는 요즘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시키고 시어머니께도 걱정하실까 싶어 알리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직원들에게 알렸는지 ‘감사하다, 건강 챙겨라, 기도하고 있다, 존경한다’ 등의 내용으로 구구절절한 기도와 응원 메시지를 받으니 오히려 눈물이 핑 돌았다. 덕분에 힘 받아 생활치료센터에서 잘 지냈고 봄이 다가오듯 확진자들도 완쾌되어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 담아 기도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어려운 여건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싹틀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하느님 안에서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으로 믿는다.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야고보서 5,15) 아멘.

조영이(이레나) 간호사·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센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