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나의 대녀 사라에게 / 이춘하

이춘하(유스티나) 시인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사라야!

지금은 봄, 온갖 꽃들이 다 피었지만 2020년의 봄은 우리가 여태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몸살을 앓고 있단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으면 그동안 몇 번은 너를 보러 갔을 텐데 혹시라도 면역력이 약한 네게 감염이라도 될까 봐서 미루고, 가끔씩 네 엄마 로사와 통화하면서 너의 근황을 듣고 있단다.

사라야!

네 나이 지금 서른넷. 한창 피어있을 봄날인데 너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있으니…. 2년 전 5월 어느 날 아침에 너의 엄마 전화를 받고서 황급히 A병원 중환자실에서 너를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나는구나. 그때 너는 혼수상태였는데 “대모님이 오셨다”고 “눈 한번 떠 보라”는 너의 엄마 목소리에 너는 실눈을 살포시 떠 주었었지.

그때만 해도, 사라야!

얼마 후엔 네가 일어날 줄 알았단다. 그래서 매일매일 주님과 성모님께 우리 사라 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기다렸는데….

내 딸 사라야!

네가 태어나던 그때가 어제같이 생생하구나. 너의 엄마가 새댁일 때에 우리는 아래위층, 한집에서 살았단다. 나는 그때 막 영세를 한 후였고,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너의 엄마가 애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걱정을 많이 하길래 동네 교우들을 모아 9일 기도를 했었고, 그러다 얼마 후에 네가 태어나서 모두들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모른단다.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이사악의 어머니인 사라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너의 본명을 사라로 짓고 내가 대모가 되었단다.

그런데 사라야!

네가 첫돌이 될 즈음에 너의 배가 딴딴해 져서 병원엘 갔었는데 네 몸속에 효소 하나가 부족해서 생긴 병이라고 하더란다. 그때부터 너의 투병생활은 시작되었고, 그 약이 미국에서만 수입을 해야 했었고 보험혜택도 받을 수 없던 때여서 약값이 엄청 비쌌단다. 어떤 이는 너를 미국으로 입양을 시키라고 했었지만 너의 부모는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그때 내가 우리 본당 신부님께 “저 어린 것이 무슨 죄로 저런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고 여쭈었더니 신부님께선 “그 아이의 죄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내가 왜 하필 우리 사라느냐고 했었지.

그런데 사라야!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 신부님 말씀이 다 옳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때부터 너의 엄마가 국회로, 보건복지부로, 제약회사로 뛰어다닌 덕택으로 지금은 너와 같은 친구들이 혜택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라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에 받았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거야. 너를 위해 관심 가져주고 기도해주셨던 많은 분들, 사랑과 용기를 주셨던 분들, 치료해 주시고 봉사해 주셨던 분들…. 물론 너의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은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사라야! 세상에 아마 그런 사랑은 없을 거다.

사라야! 요즘 내가 너의 엄마와 만나면 이런 말을 한단다.

“로사야!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니? 주님 주시는 대로 받을 뿐이지…. 최선을 다한 후엔 하늘에 맡기자”라고. 그러면 너의 엄마는 “아멘!”하면서 웃는단다. “내 딸 사라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춘하(유스티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