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별기고] 문명과 질병 그리고 인류와 교회의 길 (하) 종교분열에서 프랑스대혁명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까지 -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지성용 신부 (인천 용유(준)본당 주임),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에서 2006년 영성 전공으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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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기후위기, 자본양극화…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 국가와의 분리 이뤄진 뒤 현대세계 적응이란 요청 받아와 
전 세계 당면한 과제 끌어안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노력해야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가 최근 들어 수그러들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지금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별기고 ‘문명과 질병 그리고 인류와 교회의 길’(하)편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반추하면서 현 시점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찾는다.

페스트는 중세를 마무리 짓고 근대를 탄생케 했다. 엄청난 전염력으로 유럽인구의 상당수를 잃게 했고 그 결과 장원경제와 농노제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또 고위 성직자들이 흑사병을 피해 달아나자 중세를 지배해 온 종교적 권위도 붕괴됐다. 흑사병이 창궐하기 전까지 유럽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봉건귀족 사회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지배층은 영토와 부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든 정보와 지식까지 통제했다. 지배층과 성직계층의 몰락과 혼란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교회의 혼란은 르네상스가 꽃피는 계기가 됐다.

■ 교회 개혁 가속화

종교개혁(reformatio)은 교회 개혁을 위한 내부의 분열이었고 하나의 운동이었다. 1517년 10월 31일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가 당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사건으로 출발해,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s), 오직 은총만으로(sola gratia),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를 강조함으로써 중세 무너진 교회와 제도를 새롭게 개혁시키고자 했던 운동이었다. 십자군 이후 봉건 사회가 점차 무너지면서 상업의 발달로 농업 경제가 상업 경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사회 구조에 변화가 생겨났다. 국가주의의 등장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지배 아래 들어오게 되고 이어지는 교황권의 지속적인 몰락은 교회 개혁을 가속화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서 강력한 군주들이 출현해 귀족들로 하여금 전체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강요했다. 이러한 국가들의 군주들은,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봉건 영주이기도 했던 수많은 고위 성직자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억제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 길 잃은 유럽교회

근대철학의 아버지 테카르트(1596~1650)는 말했다. “dubito, ergo(나) cogito, ergo(나) sum.”(‘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제 철학의 중심에서 ‘신’(Deus)이 사라졌다. 이전까지의 모든 철학과 사유의 중심에는 ‘신’(Deus)이 존재했다. 그러나 근대 사유의 서막에서 ‘나’(Ergo)의 등장은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전 국민 2500만 명 중 약 2% 정도인 제1신분(로마 가톨릭 성직자), 제2신분인 귀족들이 전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국가의 중요 요직을 독점하고 각종 세금을 면제 받고 사치한 생활을 누리는 반면, 98%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당해야 했다. 당연하게 프랑스 대혁명의 타깃은 봉건 왕조를 겨냥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교회를 겨냥하고 있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시민들은 곳곳에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오래된 체제)을 상징하는 가톨릭교회를 습격하고 성상을 파괴했다. 1792년 9월 파리 혁명정부는 아무런 죄 없는 성직자 300여 명과 남녀노소 900여 명의 평신도를 학살했다. 이른바 ‘9월 학살 사건’이다. 혁명의 주도세력인 쟈코뱅당은 수도원을 폐쇄하고, 교회재산을 몰수하고 약 4만 명의 가톨릭 성직자들을 체포, 투옥, 유배, 처형시켰다. 이후 가톨릭교회는 길을 잃었다. 1794년 이후 프랑스 혁명은 교회에 대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교회는 부분적으로 정상화됐다.

하지만 이 ‘정상화’된 프랑스 가톨릭교회가 혁명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프랑스에서 종교의 힘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쇠퇴했고, 교회의 권위는 약화됐으며 국가의 세속화는 자명한 사실이 됐다. 1905년 국가와 종교의 분리는 이러한 세속화 흐름을 완성한 셈이다. 양차 세계대전 가운데서 교회는 철저한 무기력과 무능력을 체험했다. 교회는 나치에게 관대했으며 유다인 학살을 방관했다.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외면하던 교회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게 됐고 그 결과 유럽의 가톨릭교회는 급속도로 교세가 추락하게 됐다.

1962년 10월 11일 개막해 1965년 12월 8일 폐막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대세계에로의 적응’을 주요가치로, 세상 변화에 잘 적응해 현대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모색했다. CNS 자료사진

■ 현대세계에로의 적응

1959년, 요한 23세는 교황에 착좌한 지 3달 만에 전격적으로 세계공의회 소집을 공포했다. 전 세계 교회 안팎의 놀라움은 컸다. 가톨릭 2000년 역사 안에 그동안 스무 번의 세계공의회가 개최됐다. 공의회가 개최되기 위해서는 이단의 출현이나 중대한 사안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의회의 필요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교회가 계속 가라앉고 있어도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조차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모토는 ‘현대세계에로의 적응’(Aggiornamento)이었다. 세상의 변화에 무관심하고 전통만을 고집함으로써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고립됐던 폐쇄적 태도를 바꿔, 세상 변화에 잘 적응해 현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교회는 세상에 대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던 태도를 바꿔, 세상을 구원의 협력자로 보고 대화하고 협력하려는 정신으로 ‘교회의 과오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쇄신하려는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시스템을 개선해 구성원들이 서로 함께 힘을 합쳐 공동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연대성’을 말했고, ‘교회 밖에서도 구원은 가능하다’는 신학도 개진됐다. 공의회는 가톨릭만이 유일한 종교라는 확신을 버리고 세상의 다양한 종교와 사상들도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 연대로 위기 극복

2020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전 세계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관련된 많은 세계적 전문가들과 책임자들은 감염경로 추적과 차단을 위해 국제적 정보교류와 의학정보 교류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더욱더 정교하고 빠르게 운영되기를 희망했다. 수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달려갔고, 이제 막 임관된 간호장교들이 임관식 다음 날 대구로 달려가는 감동적인 장면도 목격했다. ‘달빛 동맹’이라는 광주와 대구의 자발적 시민연대가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며 지지와 응원, 위로를 해 줬고, 인천 민들레국수집에서는 ‘병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을 것 같은’ 노숙인들에게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나눠 줬다. 대한민국은 모두 함께 연대하며 ‘위기를 극복하자’는 슬로건으로 하나 되고 있다.

■ 코로나19가 바꿔 놓을 세상

인류는 지금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세상을 계획해야 할 뿐이다. 2020년 4월 지금 우리의 절박한 관심은 코로나19가 바꿔 놓을 세상이다. 그 새로운 세상은 이미 와 버렸고 ‘우리는 이제 어떠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끝나도 세계는 이전과 전혀 동일하지 않을 것이며 코로나19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질서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 교회의 역할

가톨릭교회는 전국 병상의 반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최첨단 의료시설과 장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진을 보유한 최고의 의료 클러스터(단위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톨릭 사회복지회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복지시설과 단체를 촘촘히 운영관리하고 있다. 수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의료현장에서, 사회복지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위기에 보다 능동적인 연대를 세상에 요구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성당이 무덤이 돼 버린 뉴스를 보게 된다. 필요한 이들의 자리가 돼 주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전례가 멈춘 성당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세상과 대화하지 못하는 성당이 무덤이 돼 버린 것이다. 이러한 공간이 ‘노숙인들의 급식소가 되고, 목욕시설을 제공하고, 동네주민들이 모여 코로나 사태에 대해 토론하고, 청소년들에게 직업과 미래를 고민하는 멘토들이 상주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었다면 성당을 시신안치소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겠나’ 생각했다.

위기(危機)는 위험하지만(危) 기회(機)이기도 하다. 가톨릭(보편적인)교회는 지금 세계시민의 힘과 세계적인 연대(solidarity)로 당면한 세계적 질병에 대한 공동대응과 지구온난화 문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시대 국제 자본의 횡포와 세계금융자본의 폭력에 맞서 대응하는, 깨어 있는 조직된 세계시민을 양성하고 교육하고 행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데 ‘보편적’이라 말하는 가톨릭교회, 세계적으로 방대하고 막강한 조직과 자금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세계교회와 한국천주교회의 뉴스를 접하면서 서글퍼지는 것은 필자만의 과잉된 감각인가? 지금 가톨릭교회가 할 일은 차고 넘친다.

지성용 신부 (인천 용유(준)본당 주임),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에서 2006년 영성 전공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