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가족과 이웃의 경계 / 황소희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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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데도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대북 마스크 지원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북관계가 ‘현실남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매에 굳이 ‘현실’이 붙은 까닭은 이 둘의 관계가 드라마에 나오는 단란한 가족과 같지 않고 매일 다투기 때문이다. 소위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도, 누군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면 ‘조져도 내가 조진다(단속해도 내가 단속한다)’는 마음으로 결연해지는 모습과 남북관계는 많이 닮았다.

우리가 북한에 애증의 시선을 지닌 까닭은 언젠가 회복해야 할 ‘한민족공동체’라는 틀이 우리 정서 안에 머물러서다. 한국사회의 대북인식은 다시 만나야 할 민족이라는 애틋한 관점과 남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장본인이라는 분노 어린 시선이 혼재돼 나타난다. 냉전 종식 이래 후자적 논의가 더는 설득력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려 한국에서 북한을 향한 위협인식과 분노가 사라진 공간은 무관심과 냉소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정책영역에서 잠시 나타난 ‘이웃국가론’은 이런 경향성을 반영한다.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해 상호 이익을 낼 분야에는 협력하지만, 북한의 도발에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단호히 대응한다는 논의다. 기존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이하 특수관계)’의 전환을 요구하는 이 논의에 대한 가치판단은 차치하더라도, 남북관계에 대중적 무관심과 냉소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한 번은 짚고 가야 할 주제가 나왔다.

민족적 특수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노력과 인내는 이에 대한 합의가 부족할 경우 북한이라는 존재에 국내적 피로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단일팀 결성 초창기 제기된 젊은 세대의 반발은 이 피로도를 방증하는 사례이며,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정책제안으로 나타난 것이 이웃국가론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넘어, 우리 사회에 북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합의를 모색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미워도 안고 가는 가족과 선을 지키는 이웃 외에도 한반도의 평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죄 지은 형제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르 18,21)면서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 22,39)고 전한 성경 말씀은 남북관계에 모두 적용된다. 민족도 언젠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개념이지만, 화해와 일치가 미완인 한반도에 이 관념적 가치는 가족과 이웃의 경계에 한 발씩 걸친 남북의 정서적 결속을 유지하는 동인이 될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대한 다채로운 고민과 관심, 평화를 이끌 사랑이 중심이 된 방안에 사회적 지지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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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