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15) 함께 성장하는 부부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입력일 2020-04-07 수정일 2020-04-07 발행일 2020-04-12 제 319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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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주고 감싸주는 부부로 사는 법… 오늘도 한 수 배워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어떤 방법으로든
개입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한 해였어요.
우리 부부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작년 연말에 가까이 지내는 부부들이 한 집에 모여 조촐한 송년 모임을 가졌다. 본당 ME 모임에서 만나 귀한 인연을 이어온 모임이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만나지 않아도 늘 생각나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고 걱정해주는 이웃사촌들이다.

맛난 술과 음식,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충만한 느낌이었다.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던 중 자연스럽게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던 A 언니는 말했다. “올해 우리 부부는 최고의 위기였어요. 그동안 남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그런지 올해는 모든 게 밉고 신뢰가 가지 않았어요. 일 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싸웠어요. 남편과 크게 다툰 날,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전화도 받기 싫어진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까지는 난 언제나 아이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남편하고 안 좋으면 자식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더라고요. 남편과의 관계가 내 삶의 주춧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치열하게 싸우며 내가 남편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니 남편의 장점도 볼 수 있게 되고 단점도 이제 더 이상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일제히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최근 몇 년간 경제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 겪고 있는 B 형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올해 객관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는데, 주관적으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어떤 방법으로든 개입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한해였어요. 우리 부부가 함께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이 부부의 어려움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이 안타까웠는데 서로 모든 것을 나누며 더 친밀해지고 더 깊어지는 것을 보며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부럽기까지 했다. 부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돈 문제라고들 하는데 이 부부는 가난해질수록 더 단단하게 결속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현모양처인 C 언니는 “여러분 보시기에 제 남편이 저에게 참 잘하죠? 근데 난 그게 가식으로 느껴졌었어요. 나처럼 하찮은 사람에게 저렇게 잘해주는 게 진심일 리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최근에 저는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성가대에 들어가서 노래를 해보니 생각보다 잘하더라고요. 이렇게 하나하나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고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지니 남편의 호의와 사랑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 남편은 저에게 항상 말했어요. 당신 스스로를 존중하라고, 그래야 당신만큼 귀한 배우자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고요. 또한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전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니 이제는 그 말의 뜻을 알겠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니 부부 사랑도 결국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온전해질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까지도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졌다.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가 끝나면 제일 먼저 이분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 또다시 즐겁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