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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생명을 사랑합시다 (4) 유전자 문제 ②-출산 후 유전자 검사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04-07 수정일 2020-04-07 발행일 2020-04-12 제 3190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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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로 사람 분류하고 계급화하는 세상 올지도…

유명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2013년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 BRCA1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어 유방암과 난소암 발생 확률이 각각 87%와 50%이고, 자신의 어머니도 난소암으로 10년 이상 투병하다가 57세에 사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유방암학회 김성원 홍보이사는 ‘안젤리나 졸리, 무작정 따라 하기?’라는 제목의 한 언론 기고 글에서 “상당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유전자 검사를 통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은 그녀의 암 발생 확률을 낮추고 그녀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줬지만, 그녀의 자녀는 의도치 않게 유전 정보가 노출됐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차별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홍보이사는 “이 배우의 발표만 듣고 불필요한 유전자 검사가 이뤄지거나 무작정 그녀의 선택을 따라 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 이와 관련해 돌연변이 유전자는 암 발생 위험을 높이긴 하지만 반드시 발병으로 이어지진 않으며, 예방적 유방 절제술로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긴 하지만 사망률까지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출산 후 이뤄지는 유전자 검사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개인의 유전 정보를 얻어 질병을 예방·진단·치료할 경우에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불필요한 의료 행위와 불안감 조장, 자신과 그 가족의 유전 정보 유출 등으로 부작용만 지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교수가 2019년 10월 12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DTC 유전자 검사’ 주제 세미나에서 유전자 검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출산 후 유전자 검사의 대중화에 대해 부정적 측면을 간과한다면, 자칫 사람을 분류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처럼 출산 후 이뤄지는 유전자 검사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개인의 유전 정보를 얻어 질병을 예방·진단·치료할 경우에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불필요한 의료 행위와 불안감 조장, 자신과 그 가족의 유전 정보 유출 등으로 부작용만 지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DTC 유전자 검사’ 주제 세미나에서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교수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사람의 유전자 가운데 질환과 직접 연관이 밝혀진 유전자는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이미 밝혀진 유전자들조차 연구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 “유전자 검사만으로는 질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특히 김 교수는 “유전자는 하나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능을 한다”면서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전자 검사만으로 질환을 이해하려 할 경우 “환자들에게 쓸데없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출산 후 유전자 검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하면 사회는 유전자 계급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유전자 검사의 확산과 대중화로 인해 유전자 검사 결과가 자칫 결혼이나 보험 가입, 고용 등의 상황에 있어 차별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전자로 사람을 분류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전 국가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마리아 루이사 디 피에트로 교수는 저서 「생명윤리, 교육 그리고 가정」에서 “(유전자 검사는) 한 인간의 인격적 차원을 무시하고 그를 유전자로 환원하는 본래 의미의 ‘유전자화’에 이를 위험이 있다”며 “이 위험은 의료 현장, 직장, 의료 보험, 교육 등 더욱 폭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전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원장 엘리오 스그레치아 추기경도 책 「생명윤리의 이해 2」에서 ‘유전자 정보은행’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은행은 오직 과학적 목적이나 법정에서 사용될 때에만 접근이 가능해야 하고, 사적 단체나 기업, 보험회사는 정보 접근이 불가능해야 한다”며 유전 정보로 인한 차별에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충분한 유전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치료 방법이 없는 유전 질환에 대해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유전자 검사 결과로 차별이 생기는 일 등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유전자 검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천대학교 생명과학과 남명진(마르티노) 교수는 ‘DTC 유전자 검사’ 주제 세미나에서 “유전자 검사는 상담을 통해 신중히 결정돼야 하고, 유전 정보에 대한 개인의 비밀은 보호돼야 하며,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른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 이동익 신부도 책 「생명, 인간의 도구인가?」를 통해 “유전자 의학은 개인의 유전 정보를 기초로 하여 이뤄지기 때문에 유전 정보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며 “유전자 의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는 유전 정보를 철저히 관리·통제할 법적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