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64. 성령의 상징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입력일 2020-03-31 수정일 2020-03-31 발행일 2020-04-05 제 3189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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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때 ‘물’은 ‘입양의 영’으로서 성령의 표징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91~694항, 701항
인간의 자녀에서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성사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오시는 물과 성령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옛날 일본의 한 천민 아이가 사무라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귀족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주가 새로운 성을 짓는데 그 성 기둥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일본엔 기둥에 사람을 넣고 성을 지으면 그 성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그 기둥에 들어갈 테니 아이를 그 성에서 사무라이로 교육해 달라고 청합니다. 성주는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성이 다 지어지자 약속대로 아이는 귀족 아이들과 함께 사무라이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귀족 아이들의 괴롭힘이 너무 심해서 밤에 도망치기로 합니다. 몰래 성을 빠져나가던 중 어머니가 들어있다는 기둥을 만납니다. 그는 기둥을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그 아이는 기둥을 지나쳐 도망갈 수 없었고 그래서 끝까지 참아내어 일본의 유명한 사무라이가 됩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들어계신 그 기둥에서 힘을 얻어 사무라이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어머니는 죽었고 그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 새로 태어남을 위한 힘은 기둥과 결합하여 아이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은 새로 태어남으로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물과 성령’이란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오시는 성령과 물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세례성사’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육체적인 출생으로 이 백성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태어남’(요한 3,3-5)으로써, 곧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세례로써 그 일원이 되는 것이다.”(782항)

프란치스코 교황이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아기에게 세례성사를 주고 있다. CNS 자료사진

성령은 천민 출신 자녀를 귀족 출신의 사무라이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흘린 피와 같습니다. 그 피가 기둥과 합쳐지면 마치 성령과 물이 합쳐진 ‘세례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교리서는 성령의 상징으로 우선 ‘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694 참조) 성령과 물이 합쳐지면 그것이 ‘세례성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자녀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니, 성령을 또한 “입양의 영”(로마 8,15; 갈라 4,6)이라 부릅니다.(693 참조)

세례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물을 보며 성령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이가 기둥을 보며 어머니의 희생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성사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구약에서의 세례의 예표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紅海, 붉은 바다)를 건너는 것이 그 상징입니다.(1221 참조) 세례의 바다가 붉은 이유는 아마도 ‘물과 성령’이 ‘그리스도의 피’와 일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요한복음은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9)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탈출기 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흘러나온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음을 증언합니다.(1코린 10,4 참조)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물이 솟는 바위이시고 세례를 위한 성령을 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십자가 위에서 깨진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생명수입니다. 교리서는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성령을 받아 마셨다.’(1코린 12,13)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또한 샘에서 물이 솟아나듯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이시며, 이 생수는 우리 안에서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694)라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당신 죽음으로 기둥을 통해 새로 태어남의 힘을 줄 수 있었듯이, 그리스도는 당신 희생으로 내어주시는 성령을 물이나, 기름, 혹은 빵과 포도주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그분의 희생을 무력하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모든 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