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선택적’이라는 그 말 / 김우정 신부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
입력일 2020-03-31 수정일 2020-03-31 발행일 2020-04-05 제 3189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 때 ‘선택적’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적이 있었다. 선택적 정의, 선택적 박탈감, 선택적 수사, 선택적 침묵 등등. 갖다 붙이자면 한둘이 아니겠지만 이런 현상은 무언가가 사람을 가려가면서 발휘되는 것에서 생기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내 것’이라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뿌리박고 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서조차 그런 현상을 보곤 한다. 내 시간, 내 돈, 내 땅, 내 물건, 내 아들, 내 딸, 내 자녀, 내 아내, 내 남편, 내 가족, 내 꿈, 내 사람, 내 단체, 내 본당, 내 자리 등등.

내 것이 중요해지고 그 소유에 대해 빼앗겨서는 안 될 내 것이라는 선을 긋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서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그것을 지켜내려는 시도에서 ‘선택적’이라는 말은 시작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우리는 배워왔고 알고 있다. 그런데 어느새 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라 빼앗겨서는 안 되는 내 소유가 되기 시작했고, 거기서 시작된 탐욕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들은 이익과 이권에 따라 여러 개의 얼굴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곤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감정적, 물질적 이익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이 갈리고 사람을 가려가면서 발휘되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본래의 모습과 동떨어지게 만든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본래의 모습이다.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을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인간으로 살며 그 본연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제시된 것은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욕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이었다.

참된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킨다. 그것은 때로 사랑이기도 하고, 정의이기도 하며, 따뜻함이기도 하고, 엄격함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에 사랑을 고정하려 하는 순간 그것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탐욕에 물들어 다른 모습으로 변한 채 사람들을 유혹하고 분별을 흐리게 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주께서는 잠시 그것을 보여주셨지만 그것은 참된 완성이 아니며, 참된 완성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탐욕을 떨쳐내는데 있음을 알려주셨다.

이것은 모든 교회에도 알려주시는 깊은 가르침이 아닐까. 우리가 진정으로 짊어지고 걸어가야 할 것은 우리를 ‘선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본모습을 회복시키는 ‘십자가’다.

김우정 신부 (제1대리구 병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