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주님의 약손 / 정채원

정채원(로사) 시인
입력일 2020-03-24 수정일 2020-03-24 발행일 2020-03-29 제 318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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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로 거의 사경을 헤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열꽃이 돋는 바람에 살아났다고 한다. 유치원도 그래서 도중에 포기한 기억이 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나는 늘 엄마의 약손을 잡고 살아왔다. 배가 아플 때도 엄마가 문질러주셨고 다리에 종기가 났을 때도 엄마가 업고 병원에 다니셨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의 약손, 잡고만 있어도 스르르 아픔이 가시던 그런 약손, 이젠 누구의 약손을 잡고 아픔을 달랠까.

지난 10년 동안 나는 척추 수술을 두 번 받았다. 다섯 시간이 넘는 긴 수술 후 마취에서 겨우 깨어난 다음 날, 조카가 내 손에 쥐여 준 나무 십자가, 올리브나무로 깎은 그 십자가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내 손에 딱 맞았다. 모서리를 둥글둥글하게 깎은 그 십자가는 수술 후 통증이 있을 때마다 아무리 힘주어 잡아도 손이 아프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혼자서 돌아눕지도 못하고 며칠을 보낼 때 내 손은 주님의 약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신부님의 선물이라며, 그 귀한 선물을 선뜻 내게 주고 간 조카의 따뜻한 마음도 내겐 또 다른 약손이었다.

몇 년 전 내가 무척 존경하는 선생님이 암으로 투병 중이실 때, 병상에 누워계시던 선생님께 그 나무 십자가를 가져다 드렸다. “선생님, 통증이 올 때마다 이 십자가를 잡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통증이 서서히 약해져요.” 그 선생님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셨고 불교 쪽에 마음을 두신 분이셨지만,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며 마다 않고 그 십자가를 받으셨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선생님은 세상을 뜨셨다. 돌아가시기 전 한 달 동안은 통증이 무척 심하셨다고 들었다. 통증을 견디시며 그 십자가를 손에 쥐고 계셨는지, 기도를 하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선생님의 마음은 주님의 약손을 잡고 계시지 않았을까.

지난 연말에 선생님의 시골집을 다녀왔다. 뒤뜰의 커다랗고 아주 잘 생긴 소나무 아래 선생님을 수목장으로 모셨다고 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진 후, 함께 간 문우들과 선생님의 서재를 둘러보고 생전의 선생님을 추억하며 사모님과 오랫동안 말씀을 나누었다.

서울로 떠나오기 전, 사모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제가 전해드린 그 나무 십자가를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수술 후 잡고 기도하던 십자가였는데, 요즘도 아플 때마다 그 십자가가 생각납니다. 선생님도 기도하셨을까요?” 그 십자가에 대한 나의 애틋함이 전달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며칠 후 내게 작은 소포가 배달되었다. 사모님이 그 십자가를 곱게 포장해서 다시 보내주신 거였다. 그 십자가를 보는 순간, 내가 아플 때마다 머리맡에서 안타깝게 내려다보시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고, 돌아가신 선생님을 다시 뵌 듯 울컥했다.

이제 내겐 아플 때마다 내 상처를 천천히 문질러주실 엄마의 약손도 다시 돌아왔고, 언제든 세상에 마음 다칠 때마다 주님의 약손을 잡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날로 쇠약하고 무기력해지던 몸과 마음이 한결 생기를 되찾은 듯 가뿐하게 느껴지는 건 그 약손이 늘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 아픈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면 제각기 서로 다른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다. 내 가족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이웃들에게도 주님의 약손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린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채원(로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