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 - 총보다 무서운 바이러스와의 전쟁

김혜경(세레나·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
입력일 2020-03-17 수정일 2020-03-17 발행일 2020-03-22 제 318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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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더 안아주기 위해 오늘 잠시 헤어져 있는거야”

외출 자제령으로 텅 빈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적한 거리.

지금 이탈리아는 준-전시상황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지난 1월 말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로마에 관광 온 중국인 2명뿐이었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중국만 차단하면 될 줄 알고 유럽에서 가장 먼저, 2월 1일자로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2월 21일, 롬바르디아주 코도뇨에서 현지인을 통한 지역사회의 감염이 확인된 후 상황은 급변했다. 이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는 급기야 3월 9일 밤, 주세페 콘테 총리로 하여금 3월 10일부터 4월 3일까지, 외출금지령을 선포하게 했다. 하루 더 지난 11일, WHO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현지 일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엄중하다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시에도 미사가 중단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바티칸과 산마리노 공화국을 포함한 장화 반도는 적색등이 켜지고, 일단 4월 3일까지 각종 스포츠 행사는 물론 음악회, 종교집회와 장례식 등 모든 유형의 모임을 금하고, 학교와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인들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어디나 무지한 사람의 돌발적인 행동은 있는지라, 초기에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있기도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역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안에서부터 나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탓”이라며 자기네끼리 뭉친 것이 되레 바이러스의 전국화와 세계화에 기여한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차별주의는 혐오감을 조성하기에, 바이러스는 언젠가 지나가지만 차별은 흉터로 남는다는 말도 나왔다. 이탈리아에 바이러스가 확산된 시점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으나, 그걸 따지는 것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다소 자조적인 말도 흘러나왔다.

문제는 앞으로 바뀌게 될 삶의 패턴에 대한 입장이다. 세계관이 크게 달라져 중국 혹은 뉴욕의 일이 언제든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배달음식과 온라인 쇼핑, 스트리밍의 시대가 한계에 봉착하고 과거로 전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이번 팬데믹에 대한 공동의 기억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 친구와 두려움에 대한 개념이 바뀔 거라는 것, 끝으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결국 인간은 한계에 봉착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항목에 대한 공감대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선택과 포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그것이다. 살릴 수 있는 사람만 살리겠다는 국가행정과 의료시스템은 선자에 해당되고, 교회는 후자에 해당된다. 닫았던 성당의 문이 열리고, 미사는 중단되었지만 본당사제에 따라 성체거동이 시작되고 개별기도가 증가했다. 연대와 사랑의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어, “내일 더 안아주기 위해 오늘 잠시 헤어져 있는 거야”라고 외치며 플래시 몹을 아파트 발코니에서 집단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를 비롯한 각종 자선단체들은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숙자와 저소득층 사람들을 돌보는데 발 벗고 나섰다.

결국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아마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메타노이아,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뜻이 아닐까?

김혜경(세레나·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