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53) 사순 시기에 미사를 포기한다는 것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입력일 2020-03-17 수정일 2020-03-17 발행일 2020-03-22 제 318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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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때쯤이면 수많은 군중 앞에서 국기(國技)인 스모 경기가 2주간 펼쳐지는 봄철 스모 대회 기간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올해는 텅 빈 경기장에서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지고 있다. 관중은 경기장 출입이 금지된다.

세계 곳곳에서, 특히 아시아에서, 주교들은 세계적 대유행 단계가 선언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로 주일 미사를 비롯한 모든 집회를 중단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러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며 수녀원이나 수도원에서 열리는 작은 미사들에 굳이 참석함으로써 그 공동체들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에게 문을 걸어 잠그거나 내부 전례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사태를 보자니, 실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나는 병들고 나이든 수녀들을 위한 한 요양 시설에서 매주 미사를 봉헌하는데, 이곳에도 수많은 외부인이 미사에 참석하려고 오는 바람에 주일 전례를 취소해야만 했다. 그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특히나 더 위태로울 할머니 수녀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일보다 자신들의 주일 미사 참례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도쿄의 한 남자 수도 공동체는 모든 방문자를 받아주고 있는데, 교구의 미사 중단 명령을 따르는 본당들에서 오는 신자들로 성당이 가득 찬다고 한다. 이는 순명할 줄 모르고 배려심 없으며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이들을 부추기는 동시에,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늘어난 봉헌금은 그 수도원의 금고를 채울 것이고, 아마 그 돈이 전염병 구호에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신자들은 대규모 미사가 중단된 합리적 이유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와 시민 사회 지도자들에게 순명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개인 신심이 수도자들의 건강과 안전, 심지어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이기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심지어 미사 중단 명령을 내린 주교들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한 이들도 있다. 스스로 훌륭한 가톨릭 신자라고 여기는 듯한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주교에게는 분명 그럴 권한이 있다. 실제로 전염병의 현재 확산 상황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그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교회 모임을 중단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피해 지역 주교들로서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자신은 영향권 밖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을 제외하면, 바이러스가 덮친 지역에 사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사순 시기에 꽤 오랫동안 기약 없이 미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닥친 도전이자 기회는, 이러한 박탈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깊어지게 하여 부활절에 있을 세례 서약 갱신에 대한 준비로 이어질 수 있을지 보는 것이다. 비록 부활절에 우리가 다시 모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본당 전례가 중단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평소에 미사에 참례하던 시간을 매일 독서와 기도와 묵상에 쏟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평소에 꾸역꾸역 억지로 듣던 강론들보다 더 나은 우리 나름의 ‘강론’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봉헌’도 할 수 있다. 나중에 본당에 기부할 수 있도록 돈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다. 미사는 중단되었으나 대부분의 굵직한 지출들은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적어도 도쿄에서는 성당들이 주일 미사를 하지 않는다고 전기 요금을 면제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사순 단식과 희생에는, 일정 기간만 자발적으로 결핍 속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굶주림과 억압과 기회의 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제자매들의 처지를 더 잘 깨닫게 하려는 뜻도 있다.

주일 미사를 굶어야 하는 우리의 ‘단식’이 사제가 없어서 몇 달, 또는 몇 년씩 성찬례 없이 지내야 하는 우리 형제자매들과 더 가까워지는 연대의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예컨대, 남아메리카 아마존 지역이 그렇다. 최근 아마존 시노드에서 아마존 지역의 주교들은 성찬례 ‘단식’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기혼 남성 서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주교들 가운데 누군가 나서서 그런 조치를 밟겠다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현재 아마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나머지 교회에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다. 사제 부족 현상이 급속히 확산할 것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성찬례를 이끄는 이들은 대부분 이미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이들이다. 이는 결코 밝은 미래의 조짐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강요된 일시적 성찬례 단식을 통해 우리는 장차 닥칠 성찬례의 빈곤에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답을 함께 찾아 나선다면, 단식이 우리의 영과 육을 더욱 건강하게 하듯이 사순 시기에 미사를 포기해야 하는 지금 상황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