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대구에서 뵈었던 추기경님께 / 장재선

장재선(프란치스코)시인
입력일 2020-03-17 수정일 2020-03-17 발행일 2020-03-22 제 3187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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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 벌써 13년 전이로군요. 대구에서 뵌 것이. 먼발치에서 잠깐 모습을 살핀 것이니 뵈었다고 할 수 없는데도 그렇게 고집하고 싶군요.

그날 저는 당시 대구은행장을 만날 일이 있어서 서울서 기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은행장으로부터 신임 대구교구장 착좌식이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은행장과의 만남이 끝난 후 계산주교좌성당으로 갔습니다. 착좌식 미사가 거기서 열릴 거라고 짐작했거든요. 거기가 아니었습니다. 성당 담에 걸린 플래카드에 성김대건기념관에서 진행한다고 안내되어 있더군요. 지역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겨우 착좌식 말석에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장엄한 의식이 진행되는 걸 보니 어렵게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단상에 추기경님을 비롯한 우리 가톨릭 어른들께서 자리하고 계신 것이 반갑더군요.

추기경님께서는 그날 약간 조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몸이 무척 불편하셨던 시기였지요. 그럼에도 성심을 다하기 위해 착좌식에 오셨던 것이지요. 그 후 두 해가 다 가기 전에 선종하셨습니다.

추기경님, 대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유독 큰 환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땅에 아직 살아 계셨더라면, 그 넉넉했던 품으로 대구의 아픔을 위로해주셨을 줄 믿습니다. 우리 교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겸허히 자세를 낮춰 언제나 그늘진 곳을 살피셨던 분이니까요.

우리 성당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중단한 것도 추기경님께서는 어루만져 주셨을 것입니다. 공동체가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 교회가 동참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그런데 이번에 한 신흥 종교 집단의 발호로 인해 대구에서 감염증이 확산한 것은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안겼습니다. 그 집단의 절반이 젊은이라는 사실은 특별히 성찰해야 할 일이지요. 그들이 우리 공동체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봤기에 극단적 종말론에 빠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나눔 온기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의료진과 자원 봉사자들이 대구에서 보여준 헌신이 희망의 씨앗으로 전국에 퍼졌으니까요.

저는 전북 전주에서 한 제빵 회사가 수천만 원어치의 제과류를 대구·경북 의료진에게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 회사는 코로나 감염증 사태로 매출이 90%가량 줄어 경영이 어려운 상태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들을 돌보느라 끼니도 거르고, 밤낮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추기경님, 생전에 슬픔, 노여움 등의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는 게 주변 분들의 증언입니다. 그래도 보통 사람의 희로애락을 누구보다 잘 감싸주셨지요. 만면에 무구함이 감도는 특유의 웃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요. 저는 추기경님의 위대함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받드는 신앙에 한껏 경건하셨으나 사람의 연약함을 인간적 연민으로 보듬어주셨던….

추기경님께서는 이 환란의 시기에 전국으로 퍼져나간 나눔의 온기를 크게 반기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고통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자며 신도들을 독려하셨을 것입니다.

추기경님,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더욱 생각납니다. 대구에서 뵈었던 그 모습이 암암히 그립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재선(프란치스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