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종 전염병 극복을 위해 모든 이들과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

입력일 2020-03-10 수정일 2020-03-24 발행일 2020-03-15 제 318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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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기 주소서
사순 시기 더욱 열심히 바치는 기도로 ‘십자가의 길’을 꼽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대중적인 신심을 실천하는 십자가의 길은 공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바칠 수 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길어지면서 온 국민들이 고통받고 신자들은 성당조차 자유롭게 오가기 어려운 이 시기, 야외 성지에서는 물론 각 가정 안에서 묵상하며 바칠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을 소개한다. 이 ‘신종 전염병 극복을 위해 모든 이들과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은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장으로 활동 중인 손기철(베드로 다미아노·오른쪽 사진) 신부가 깊은 묵상 안에서 길어 올린 기도문이다. 손 신부는 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의사 출신 사제로, 현재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1처.

■ 제1처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빌라도의 이야기는 바로 비수가 되어 당신과 우리의 심장을 찌릅니다.

매일 매일 두려움과 공포, 불안에 짓눌리고서야

죽음 앞에 서신 당신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려 봅니다.

주님, 당신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몸과 마음으로 따르오니,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2처.

■ 제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나자렛에서 아버지 요셉과 늘 만지던 푸르른 나무는

이제 무겁고 무서운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앙공동체와 국가들에게 신종 전염병은

갑자기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이 새로운 십자가를 당신과 함께 지고 가길 청하오니,

부디 뒤돌아보지 않고, 마지막까지 걸어가도록 도와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3처.

■ 제3처 -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거뜬히 지실 줄 알았던 십자가의 압박은 어깨와 허리를 짓누르고

다리가 떨린 당신을 땅에다 매칩니다.

처음 전염력이 빠를 뿐이라는 이 병은 어느새 우리의 몸과 마음을 헤집어

땅에다 매칩니다. 너무나 지쳐가고 있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특히 당신과 함께 쓰러진 이들에게 다시 일어날 기운과 용기를 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4처.

■ 제4처 -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당신께서 어디를 가시든 묵묵히 옆에서 지켜만 보셨던 성모님을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 어떠한 말씀을 나누셨는지요.

오늘도 환우들 옆에 계신 성모님께서 묵묵히 당신의 망토로 감싸주시길

청합니다. 특히 저희들이 바치는 묵주기도가 감염의 위험 가운데 있는

중증환우들에게 기도의 방어막이 되게 하시어,

항상 성모님의 눈길이 자비로이 머물게 하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5처.

■ 제5처 -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당신의 충직했던 제자들은 어디가고 시몬은 얼떨결에 당신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느닷없는 혼란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 연구자들과

아낌없이 후원하는 이들에게 굳건한 의지와 지혜를 주시길 청합니다.

또한 본업을 뒤로한 채 우리를 짓누르는 병에 맞서는

모든 이들의 숭고한 헌신에 맞갖은 결실을 맺게 하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6처.

■ 제6처 -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삼엄한 경비와 수많은 군중 사이를 뚫고 베로니카는 주저 없이

당신께 다가가 피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 드렸습니다.

초유의 심각한 역경 속에서도 베로니카처럼 주저 없이 마스크를 나누고,

전세금을 낮추고, 작은 정성이라도 봉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당신께서는 이 아픈 상처들을 기꺼이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이 부디 다시 용기를 내어 이 역경을 헤쳐 나가도록 절망의 눈물을 닦아 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7처.

■ 제7처 -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미사 중단’이라니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한국천주교회는 가장 아픈 사순절과 맞닥뜨렸습니다.

가뜩이나 메마른 영혼들이 당신과 함께 흙먼지 속으로 내동댕이쳐집니다.

구원의 보증인 미사성제를 모든 신자들과 함께 소리 높여

봉헌하고 싶은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시어,

다시금 절실히 느끼게 된 삶의 기쁨과 희망의 원천인 미사를

다함께 올리도록 허락하여 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8처.

■ 제8처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전교여행을 따라가며 쉬이 드러나지 않는 수고로움으로

작은 디딤돌이 되었던 그들에게

당신의 숨 가쁜 한 두 마디 말씀만으로도 위로는 차고 넘칩니다.

가족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나날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부모들에게도

특히 온 가족 삼시세끼의 생활을 뒷바라지하는 이들과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기도로 후원하는 신자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9처.

■ 제9처 -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당신께서 완전히 탈진하셔서 십자가를 부여안고 다시 또 넘어지셨을 때,

이 잔인한 길의 끝이 보이지 않으셨지요!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은 곳곳이 지뢰밭이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탄처럼 초긴장으로 우리를 몰아세웁니다.

우리들의 오만함은 깨어졌고, 다 같이 탈진해 버렸사오나

부디 이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고,

전염병을 꼭 극복하여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10처.

■ 제10처 -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날카로운 칼로 살을 도려내듯 피땀에 절은 옷을

사정없이 떼어내는 옷 벗김에 그저 모두 숨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미생물은 소리 소문 없이 숨어들어 마스크조차 관리 안 되는

우리의 부족함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거리두기로 서로를 밀어내어야만 하는 아픈 상처에도

거짓된 소식들로 인해 뜻하지 않는 발가벗김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도

새살이 돋는 치유의 은총을 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11처.

■ 제11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모세의 구리뱀처럼 당신을 십자가에 달아 올린 대못들로

온 몸이 통증으로 휘감을 때조차, 외마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셨지요.

또다시 지금 많은 이들을 휘어잡고 나락의 길로 내몬 사이비 종교가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죄 없는 이들의 희생을 불러일으킵니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로 다시는 당신의 십자가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저희들의 영적투쟁을 이끌어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12처.

■ 제1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누군가 사랑하는 가족이었을 확진자들의 죽음을 매일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몹시 힘겨운 2020년 사순절입니다.

삼 일간의 위령기도 소리도 잦아들고, 슬픔에 짓눌린 유가족들을

찾아뵙기조차 망설여지는 기막힌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례미사마저 허락되지 않는 미약한 영혼들에게 당신께서 먼저 손 내미시어 죽음의 강을 함께 건너 천상낙원으로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또한 유가족들에게도

당신의 죽음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셨듯이 위로와 희망을 베풀어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13처.

■ 제13처 -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숨이 멈춘 당신의 몸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듯

모든 것들이 가라앉고 멈추고 있습니다.

거리도, 학교도, 모임들도, 하늘길도,

그저 무심했던 일상들이 가라앉아 숨을 쉬기 어려워

생업이 달린 이들의 물적, 심적 고통이 나날이 쌓여갑니다.

주님, 이제 다시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기회를 맛볼 수 있도록

저희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다시 활기찬 생활로 당신을 찬양하도록 저희들을 이끌어주소서.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 제14처.

■ 제14처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무덤에 묻히심으로 저희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가까워졌듯이

모든 신앙인들이 두 손 모아 바라는 부활의 봄을 준비해 두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허리를 동여매고 신앙 위에 굳게 서고자 하오니,

성부의 뜻대로 저희들을 이끌어주시고

성령의 인도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