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의 일꾼이 필요한 시대 / 황소희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입력일 2020-01-14 수정일 2020-01-15 발행일 2020-01-19 제 317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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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왜 우린 기도만 할까요. 교회는 왜 기도하는 것으로 매번 퉁치나요.”

국가와 사회 그리고 세계의 여러 현안에 대한 교회의 대응이 ‘기도합시다’로 마무리되는 것이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혹자는 내게 ‘기도만큼 중요한 건 세상에 없다’고도 반박했지만, ‘구체적인 실천과 방향성’이 없는 기도는 가만히 누워 간절하게 감이 ‘알아서’ 떨어지게 해 달라고 비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때는 교회가 참으로 무능해 보였다.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교회가 초국경 평화 네트워크로서의 기능을 담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시점부터였다. 시리아 라카 지역을 점거한 테러 단체 다에시가 스스로 국가(Islamic State·IS)라 선언하고 조직원을 모집했던 2010년대 중반, 유럽 지역에서 평범한 삶을 이루던 젊은이들은 국경을 넘어 전사가 되거나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지칭하는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변해 미국,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국제적인 연합군이 라카를 수복한 후 IS는 와해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다시는 이런 단체가 창궐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은 인류 전체가 짊어져야 할 과제로 남았다. IS를 통해 나타난 글로벌 지하디즘(이슬람 근본주의 하의 무장 투쟁)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근본주의적 종교 국가를 만들겠다는 개인적 신념이 테러 행위에 가담케 하는 유인이 됐다는 점이다. 군사력과 물질적 이익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국가 중심적 국제정치와 개별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강제력과 정체성만으로는 초국경 테러 네트워크를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명징해졌다.

결국 현재의 한계를 보강할 수 있는 해법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규범’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화’ 된 ‘초국경 행위자’의 필요성을 소환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기도만 한다고 못마땅해하던 교회가 전 세계를 가로질러 ‘조직화’돼 있고,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큰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이기 때문이었다. 바티칸 연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의 전 세계적 조직력과 정보력은 북한을 제외하고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모든 개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언제나 인간 삶의 근본 가치들을 분명히 제시하고 정치 활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확신들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말했다.(「복음의 기쁨」 241항) 국제정치에서 교회의 규범적 영향력과 교회의 활동에 대한 인류 개개인의 공감 비중이 커질수록 지상의 평화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예언자로서의 교회,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평화의 일꾼이 가득한 이 단일하고도 거대한 평화 네트워크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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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