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17) 호상(好喪)이란 없습니다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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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자매님과 그분의 남편 이야기입니다. 그 자매님은 젊은 시절부터 천주교 신앙을 가졌고, 결혼 한 후 자녀들을 낳아 천주교 신앙 안에서 잘 키운 분입니다. 단, 남편 분은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아내와 자녀들이 천주교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언제나 지지하고 격려했지만, 본인이 성당에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집이 성당 근처라, 형제님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아내와 함께 성당에 와서 자신의 아내가 하는 봉사에 작은 도움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60세는 넘어 보이는데, 아내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성당에서 조용히 봉사하고 있는 모습과 그 얼굴표정을 보면 어찌나 해맑은지요…. 마치 아이가 환희 웃는 표정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는 그 형제님에게 다가가서, ‘이제 ‘성당’에 한 발짝 담그셨으니, 한 걸음만 더 담그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며 입교 권면을 하고 싶었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누구 못지않게 신앙인처럼 살아가는 형제님의 모습을 보면 반가움과 고마움이 앞서 악수만 하지, 신앙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요. 형제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자매님의 얼굴도 뵐 수 없었습니다. 정확이 말하면, 형제님의 어머니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은 토요일이었고, 빈소가 멀리 지방에 있는 터라 나는 조문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더 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형제님의 가족들 모두가 어머니의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른다고 했기에, 나는 할 수 없이 주일 날 본당을 지키며 미사 중에 기도만 드렸습니다.

자매님과 친분이 있는 신자 몇 분은 지방에 있는 빈소에 다녀 온 모양입니다. 다녀오신 분들은 나에게 빈소 상황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는데, 형제님의 어머니 연세가 거의 100세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속으로 ‘100세라, 와! 장수 하셨구나. 호상이었네.’ 그러면서 예전에 105세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와 98세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30년도 더 되었을까…,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그 다음 해엔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고, 그렇게 장례를 치르던 날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장례를 치르는데, 큰아버지를 비롯해 고모들이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셨고, 찾아오는 조문객들 마다 ‘호상이네요’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조문이 다 끝난 밤이 되면 큰 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고모들이 진심 흐느끼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마음이 무척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슬픔은 다 같을 텐데! 연세가 들면, 죽음 앞에서 조금은 초연해져서 곡을 하며 목 놓아 울지는 않는 것 뿐인데. 그러나 진심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은 나이를 불문하고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며 목 놓아 울고 싶은 생각’은 들었을 겁니다.

며칠 후, 자매님, 형제님과 성당에서 마주쳤습니다. 그 날도 형제님은 아내가 하는 일을 어김없이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형제님을 보는 순간 나는,

“형제님, 큰 일 치루셨네요.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저는 그 슬픔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분명 극락왕생 하실 거구요, 형제님도 지금은 비록 힘들고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우리 함께 어머님께서 좋은 곳에 잘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런 다음 형제님의 눈을 바라보는데, 정말이지 눈가에는 수정처럼 맑고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눈물처럼 ‘그렁그렁…’ 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