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2) 까막눈 뜨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20-01-09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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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존재라는 인식,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
그리 영특하지도 예쁜 것도 아니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나를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나의 열등감을 일시에 폭파시켰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새삼 눈을 뜬 것이다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았다. 내가 선택한 신앙이 아니다. 자라면서 친구들로부터 네가 원하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으니 참 어려웠겠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누누이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답하곤 하였다. 내가 세상일을 알고 이것저것 따질 나이에 종교를 택해야 했다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을지 모르는데, 아니면 아예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을지도 모르는데,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이냐고,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어도 부모님이 입학시켜 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까막눈으로 남아 있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처럼.

그런데 사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지나서 보니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인식하게 된 이후의 일임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주일학교에 다녔고 미사에 빠진 적도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전례에 참여하고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의무에 불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조차도 내 마음 밭을 일구고 계셨던 그분의 작업이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가, 나, 다해 미사를 통해 수십 번씩 들었던 성경 구절들, 종교 용어들, 믿을 교리 등으로 적어도 내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을 만큼, 어쩌면 가시덤불을 걷어 낸 밭 정도로는 준비될 수 있었을 것이니. 이제 그분께서 씨앗을 뿌리실 터인데 언제 어떤 방법을 택하실 것인가.

중학생 때 어느 수녀님을 만났다. 토요일에 성당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낯선 수녀님께서 친구들 몇몇과 함께 부르시더니 모임을 하나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함박웃음을 짓고…. 가끔 성령께서는 그렇듯 우리에게 따지고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으시는 듯하다. 수녀님의 기쁨에 낚였을까, 즉시 그러겠다고 했고, 그다음 토요일부터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첫 모임 때 들었던 이야기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잊히지 않는데,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랑하시며, 우리는 형제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막 사춘기에 들어서던 시기여선지 하느님께서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무척 놀랍게 들렸다. 그리 영특하지도 않고,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유한 집안이 아니라서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나를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은 나의 열등감을 일시에 폭파시켜 버렸다. 그렇구나, 저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신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재주나 조건은 그저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한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더 이상 부러워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었다. 그 뻔한 사실을 왜 그때서야 알아듣게 되었을까. 아니, 그때라도 알아듣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나의 삶은 얼마나 밋밋하고 쓸쓸했을까! 그렇게 나는 포콜라레 영성을 만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저녁 준비를 하고 계신 어머니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시켜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그 작고 평범한 행위가 주는 기쁨 역시 그날 나의 열등감이 폭파된 것만큼이나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 참으로 신선했고, 살맛나는 일이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인식,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당연하다! 내 삶이 헛헛할까 하여 포콜라레 영성을 통해 당신께서 사랑이심을 밝혀 보이신 그분, 이 사실만 보아도 그렇지 아니한가!

장정애 시인은...

「어둠은 빛의 꽃받침」 등을 펴낸 시인.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과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치매인 어머니와 함께한 일상을 담은 수필집 「어머니의 꽃길」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부산광역시 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포콜라레 운동의 솔선자로서 일상의 삶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