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 역사와 활동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사진 이스라엘 성지 한국 대표부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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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넘게 거룩한 땅 지키며 주님 사랑 전해
성 프란치스코-술탄 만남 이후 성지 보호 활동 본격 도맡아
끊임없이 형제들 파견 이어와
핍박 받는 신자들 보호하고 순례자 도우며 선교·사목활동
난민캠프 구호활동에도 박차
이스라엘 성지 한국 대표부, 현지 성지보호구 지원 역할

고통받는 성지는 비단 시리아만의 일이 아니다. 성지는 순례자들에게는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거룩한 공간이지만, 정작 현지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에는 너무 혹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이러한 현지 신자들을 돌보며 800여 년에 걸쳐 성지를 보듬고 있다. 성지와 현지 신자들과 그 자리에서 함께 살아가며 성지를 돌보고 있는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의 활동을 알아본다.

주님무덤성당에서 거행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작은형제회 형제들은 매일 주님무덤성당에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행렬을 거행한다.

■ 성지를 지켜온 성지보호구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한 하느님의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승천 이후 사도들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방은 주님의 역사가 실제로 있었던 땅이다. 예로부터 신자들은 성지를 순례하며 하느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신앙을 고취시켜왔다. 그러나 중동 성지에 대한 박해는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1071년 셀주크 터키족이 성지 지역을 점령하면서 순례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은 약 2세기에 걸쳐 이어졌다. 이 긴 전쟁의 와중에 작은형제회의 설립자인 프란치스코 성인은 십자군전쟁과는 별개로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을 향해 선교여행을 떠났다.

성인의 선교란 ‘그리스도교 개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기’였다. 성인은 이 선교여행 중 적군의 수장인 술탄을 만났고, 성인에게 감명을 받은 술탄은 1219년 작은형제회가 성지의 순례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증서를 써줬다. 작은형제회는 이미 1217년 첫 총회를 통해 세계 곳곳에 퍼진 작은형제회를 관구단위로 분할하면서 성지보호구를 설정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과 술탄과의 만남 이후 작은형제회는 본격적으로 성지를 보호하는 활동을 펼쳐나간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성지보호구는 아랍세계에 남은 유일한 그리스도교가 됐다. 작은형제회는 특히 주님무덤성당을 지키기 위해 끊이지 않고 ‘형제’(작은형제회 회원)들을 파견했고, 아랍세계의 탄압 속에 성지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순교한 ‘형제’들이 수천에 이른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에 작은형제회는 1333년 이집트의 술탄과의 협상으로 최후의 만찬 성지를 얻고, 주님 무덤 성당에서 전례거행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에 1342년 클레멘스 6세 교황은 칙서를 통해 작은형제회의 성지보호구를 법적으로 인준하고 세계의 모든 관구에서 성지보호구에 ‘형제’들을 파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작은형제회의 활동은 단순히 성지와 순례를 오는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었다. 성지로 파견되는 이들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교도들인 현지인들을 대함에 있어 “그들의 종이 되라”고 당부했고, 이후로도 성지보호구는 성지와 순례자, 그리고 성지 지역에서의 선교와 사목활동에 노력해왔다.

올리브 산 성지 근처에 성지보호구가 건축 중인 신자들을 위한 아파트. 성지보호구는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자들이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 성지와 성지 신자들을 보듬다

오늘날 성지는 또 다른 박해로 신음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고통받고 있는 지역은 바로 바오로 사도가 회심한 다마스쿠스가 자리한 시리아 지역이다.

시리아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전쟁이라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첫 번째로는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이 시작됐고, 이 전쟁을 통해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확장하려고 무력행사를 진행했다. 또 쿠르드족들도 이 혼란 속에서 자신들의 독립 국가를 형성하고자 무장집단을 형성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터키군이 쿠르드족을 제압하고자 시리아를 침공하기에 이렀다. 긴 전쟁 속에 시리아의 전 국토는 황폐화됐다.

헤아릴 수 없는 민간인들이 살해됐고, 시리아 인구의 절반은 나라를 떠났다. 그중 심각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성당을 파괴하고 신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성지보호구가 관할하는 지역의 신자 비율은 30%였지만, 지금은 2%도 채 되지 않는다.

또한 시리아의 전쟁으로 성지보호구가 관할하고 있는 레바논과 요르단에도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큰 규모의 난민캠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위험 속에서도 성지보호구는 오히려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성지보호구는 이 지역에서 관할하는 16곳의 본당과 9개의 난민캠프에서 사목활동과 구호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카리타스를 비롯한 세계의 구호단체들을 통해 전달되는 구호물품을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성지보호구 차원에서도 ‘프로 테라 상타’(Pro Terra Sancta)라는 NGO를 설립해 성지의 신자들을 위한 지원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 전쟁 성폭력으로 미혼모가 된 이들을 돌보는 등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성지보호구 역시 핍박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 성지의 신자들은 극도의 고립과 억압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지역에 자리한 성지의 신자들은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1월에도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인 22명을 살해하는 등 군사적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살해당한 이 중에는 무장하지 않은 시민도 있었다.

이스라엘 다른 지역도 신자들의 사정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유다인만을 위한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해 아랍인들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신자 대다수가 아랍인이다.

■ 성지보호구 지원 창구, 이스라엘 성지 한국 대표부

한국에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성지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작은형제회 이스라엘 성지 한국 대표부(책임 김정훈 신부, 이하 성지대표부)는 한국에서 성지보호구를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성지대표부는 성지보호구의 대사 역할을 하면서 성지보호구를 지원하는 곳이다. 한국에는 2003년 설립돼 성지보호구의 홍보, 성지순례, 성지보호구 후원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김정훈 신부는 “성지 자체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성지를 지키고 있는 신자들은 신앙을 지니고 있는 있다는 것 자체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성지보호구는 어떻게든 신자들이 성지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계좌 하나은행 158-910014-04104 재)프란치스코회

※문의 010-9594-5648 이스라엘 성지 한국 대표부, terrasanta.kr

예루살렘의 테라 산타 학교 모습. 성지보호구는 성지에서 여러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사진 이스라엘 성지 한국 대표부 제공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