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노아 때와는 다를 수 있는가? / 양기석 신부

양기석 신부rn(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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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창세 6,5-7)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마태 24,38-39)

기후위기와 현대 세계가 겪는 고통은 핵발전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시스템으로 영위되는 세계의 생활방식 때문입니다.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마치 인간 행복의 기본인 듯 착각한 결과물이 현재의 위기 상황입니다.

돈만 있으면 마치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삶의 태도가 오히려 우리를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세먼지 가득한 대기와 해수면의 상승, 사막화를 일으키는 석탄화력발전소와 방사능 물질을 쏟아내는 핵발전소의 위험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내 배달앱을 운영하는 회사가 독일의 회사에 무려 4조 원이 넘는 금액에 매각이 되어 또 하나의 창업 신화라는 칭송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유명 여배우를 앞세운 배달회사의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안락한 삶을 위해 쓰고 버리는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못해서 바닷물과 식수를 오염시키고, 가난한 나라의 이웃들을 플라스틱과 각종 오염 물질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노아 때처럼 심판자 앞에서 위태로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 지표가 이미 우리가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세계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위기의 순간 뭇 생명을 구한 노아와 같은 이웃들이 보입니다. 전 세계는 ‘그린 뉴딜’이라는 새로운 화두로 열띤 토론 중입니다. 시작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에너지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고착화해온 여러 불합리한 사회구조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변화뿐만 아니라, 소농 보호, 지속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모색, 대지와 숲, 해양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 전환의 시기마다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기 쉬운 노동 계층의 고용안전과 복지, 불평등 해소와 미래 세대를 위한 무상교육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등…, 수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후위기 비상 행동’이 각 지역에서 조직되거나 준비 중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존엄하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를 할 때 그 ‘존엄성’이 지켜집니다. 우리의 모습은 노아 때의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기석 신부rn(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