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집밥 / 김양아

김양아(스텔라)시인
입력일 2019-12-17 수정일 2019-12-17 발행일 2019-12-25 제 3175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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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성당 가는 길은 계절마다 어느새 달라진 풍경을 꺼내놓는다. 때론 목련이, 학교 담장에 흐드러진 덩굴장미가 혹은 배롱나무, 눈 시린 나목까지 그들이 건네는 햇살 섞인 아침 인사가 늘 환하고 사랑스럽다.

신선한 아침을 호흡하며 나는 한적한 이른 시간인 학생미사에 자주 참례하는 편인데 앞줄의 좌석들은 중1부터 고3까지 학년별로 채워진다. 늦잠 때문인지 간혹 미사 중간에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온갖 소소한 유혹을 물리치고 와서 앉아있는 풋풋한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하단 생각이 든다.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그런지 뒤에서 보니 듬성듬성 빈자리가 유난히 눈에 띄던 어느 날, 신부님께서 미사에 참례한 친구들을 격려해주면서 알기 쉽게 비유로 들려주신 말씀이 포근하게 와 닿았다.

“미사란 ‘집밥’과 같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심심한 맛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먹음으로써 건강해진다.”

‘집밥’이란 단어를 입에 머금는 순간 엄마가 차려주던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이 떠오른다. 요즘은 단체급식을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점심 도시락을 싸갖고 다녀야했다. 그날의 반찬이 궁금해 쉬는 시간에 슬쩍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다 비우기도 하고, 친구들과 교실에 둘러 앉아 혹은 운동장의 등나무 그늘 벤치에서 함께 점심을 나눠 먹던 재미도 쏠쏠했다. 그리고 같이 숙제한다는 핑계로 수시로 집에 놀러오는 친구에게도 엄마는 늘 따로 상을 차려 넣어주곤 했다. 특별하지는 않아도 정성껏 챙겨주던 그 밥상은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예전엔 무심하게 쓰였던 ‘식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식구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정도로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가족도 제각각 다른 일상의 스케줄로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일이 드물다.

게다가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끼니는 혼자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었고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사먹는 인스턴트식품과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지는 바깥의 음식이 종종 집밥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간편한 식사를 찾게 되면서 대충 때우기 위한 식사는 자칫 건강에 소홀해지기 쉽고 마음도 허해질 수 있다.

갓 지어낸 밥으로 정성들여 차려낸 집밥은 모난 마음을 둥글고 순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그 포만감과 온기로 지친 일상을 위로해주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리게 만들어 준다. 마주보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때 우러나오는 감사기도는 물론, 왠지 소중한 존재가 되어 듬뿍 사랑을 충전하는 느낌이 든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이끌어 주시면서 숯불 위에 물고기와 빵도 준비해 놓으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말씀하시던 주님,

비단 미사 중 영성체 때뿐만 아니라 매순간 당신 전부를 내어주시며 우리에게 밥이 되려고 오신 주님은 늘 따뜻한 집밥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신 건 아닐까? 우리 영혼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줄 집밥을 배고픈 이웃들과 기쁘게 나누기를 바라시면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양아(스텔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