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이제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할 때다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rn(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9-12-17 수정일 2019-12-17 발행일 2019-12-25 제 3175호 2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어떤 문제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기도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한 형제가 본당신부에게 “신부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본당 신부는 정색을 하면서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인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하며 단호히 안 된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다른 형제가 본당 신부에게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신부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본당 신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형제님, 기도에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답니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책 「프레임」을 참고함) ‘담배를 피우면서 기도하는 행동’은 이해할만 하지만 ‘기도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행동’은 마땅한 태도가 아니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어떻게 프레임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서 얻어내는 결과물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담배 피우기를 다른 활동으로 치환한다면 ‘기도의 일상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일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설거지하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묵주기도나 화살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고해성사에 대한 프레임을 생각해본다. 교회법에 따르면, 모든 신자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이상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한국천주교회 2018년 통계에 따르면, 고해성사는 전년도에 비해 15.1% 감소하여, 다른 성사들에 비해 가장 큰 낙폭을 보이고 있다. 아마 해를 거듭할수록 고해성사를 보려는 신자들은 더욱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새로 영세한 신자들은 늘어가면서 고해성사를 비롯해 여러 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줄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교회가 신자들에게 ‘의무 프레임’으로 고해성사를 강조하다보니 부담스럽고 힘들어하여 점차 멀리하는 경향을 띈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일미사에서도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고해성사가 부담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고해소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죄스러운 점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인정하고 드러내기를 꺼려한다는 점이다. 요즘 자신의 내면을 잘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고해성사에도 영향을 미쳐서 고해소 안에서의 자기노출을 잘 못하지 않나 싶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고해성사를 과거 전통적인 <의무 프레임>으로 대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의무 프레임>보다는 <치유와 화해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오늘날 신자들에게 훨씬 유효할 것이다. 최근 ‘상설 고해소’가 여러 군데 설치되어 고해성사를 통해 치유 받거나 화해까지도 가능하게 할 기회가 마련되어 있어 다행이다. 보다 바람직한 고해는, 누구든지 접근이 용이한 상담과 더불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새로운 프레임을 적용해야 할 분야는 낙태를 반대하는 생명운동이다. 2019년 4월 11일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형법이 ‘헌법불합치’라는 선고가 내려졌고, 2020년 말까지 법률을 개정하지 못하면 낙태 처벌법은 폐지될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해온 가톨릭교회는 유감을 표했지만 후속 입법 절차에 따라 성숙하고 보편적인 생명존중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몫이 더욱 커졌다고 하겠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교회가 실행해온 생명운동의 실효에 대한 전 방위적인 반성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기존의 생명운동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논의의 장 없는 하달식 생명운동, 오히려 교육과 참여 기회를 놓치게 한다.” “교회, 임신 가능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삶의 요건이 충분한지 물어야 한다.” “생명운동의 시야가 좁고, 그 외의 생명, 삶과 연관 짓지 못했기 때문에 낙태 반대 운동이 한계를 갖고 있고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어렵다.” 등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이런 비판을 수용한다면 ‘낙태는 살인’이라는 <기존의 생명운동>에서 ‘생명과 삶을 연관’ 짓는 <새로운 생명문화운동>으로 프레임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동안 생명운동의 범주와 지평이 너무 ‘태아’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이제 문화적인 관점에서 삶을 넓게 바라보고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는 동안 겪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폭력, 혐오, 차별과 같은 죽음의 문화가 사랑과 생명의 문화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생명문화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rn(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