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성숙한 믿음 / 김경숙

김경숙(체칠리아)rn시인
입력일 2019-12-10 수정일 2019-12-10 발행일 2019-12-15 제 317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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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의 뜨락에 젖은 낙엽처럼 엎디어 내가 있다. 어디까지 겸손해져야 보이겠는가!/ 침묵 속에 사랑의 빛은 깨어나/ 새 옷 단추 여미듯 설레고/ 밭고랑 주름처럼 깊어가는 시간/ 낮 추인 마음이 꽃잎처럼 보드랍다./ 불어오는 맑은 바람,/ 사시사철 푸른 올곧음 일으켜/ 감사의 입맞춤에 갈 길이 멀지만/ 보이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겉옷 같은 시간 보내고/ 마음 열고 단단함을 마중 나간다.” (김경숙 작가의 ‘자화상’)

봄빛에 연푸른 이파리가 간질간질 가슴 태우더니 어느새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 또 서 있다. 첫눈과 함께 햇살 가득한 단풍은 코끝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달아났다.

얼마 전 가을바람이 산으로, 들로 유혹할 때 나는 마음 밭을 가꾸고 있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수원교구에서 주최하는 성령 세미나를 참석하였다. 두 달가량 경기 안양 명학성당에서 매주 두 시간씩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다.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매일 종종거리며 매장 일이며, 구역장이며 성가대 등 이것저것 바쁜데, 하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소공회장님 문자가 왔다. 신부님께서 “봉사자들은 꼭 듣기를 바란다”라는 말씀에 신청하게 되었다.

나의 염려는 첫 강의를 듣는 순간 다 날아갔다. 빛처럼 환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동안 보이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나를 묵상하게 했다. 열심히 살아오면서 온갖 걱정과 고민을 한 광주리 안은 채 내려놓지도 못하며 살았는데 성령 세미나를 마치고 나니 무거운 광주리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사랑과 배려와 감사가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신은 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지금도 기억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을 때 나는 하느님의 사랑에 익어 가고 있었다.

특히 박 요셉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는 부족한 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느님이어야 한다”라는 말씀은 나의 눈을 뜨게 했다. 그리고 “싸움을 하더라도 기도를 먼저 하고 싸워야 영적으로 무장되어 악의 세력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씀,

“세상을 바라볼 때 나의 입장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여 하느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씀 등, 신선한 공기 같은 맑은 강의는 불안했던 미래의 통로를 환하게 비추어 주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7주 과정의 성령 세미나를 마치고 나니 홀쭉했던 마른 나의 신앙이 토실토실 알밤처럼 속이 꽉 찬 느낌이 마치 값비싼 보약을 먹은 것처럼 든든함이 밀려왔다.

우리가 세수를 하지 않고 생활하면 얼굴에 트러블이 생기듯이 아무리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내면을 성숙하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마치 겉옷 신앙, 겉옷 믿음처럼 멈추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체계적인 세미나는 우리 신앙인에게 꼭 필요한 것 같다. 자기 생각으로 판단할 때는 세상일이 힘들어지는 것들도 주님의 마음을 먼저 자리하고 나면 흙처럼, 물처럼 아우름이 머물고, 믿음의 잔뿌리도 시나브로 굵어지게 될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아버지가 햇살 타고 떠나시기 전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실 때 성호를 끝없이 긋고 계시던 그 날에도, 시어머니께서 중풍과 치매에 걸리셔서 돌봄으로 지쳤을 때 두 자녀를 통해 기쁨의 선물을 주시며 뜨겁게 위로해 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은 내 옆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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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체칠리아)rn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