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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미디어의 마녀사냥 시대가…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11-26 수정일 2019-11-26 발행일 2019-12-01 제 317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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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19)
마녀는 원래부터 없었다. 오로지 조작되었을 뿐이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이, 필설로 다 못할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하고 허위자백을 하고, 화형에 처해졌다.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됐던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교회를 지킨다는 사람들이 자행하는 마녀사냥이었다. 스스로 약해지고 불안해지고 위태로워지자 드러낸 집단 히스테리였으며 이른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군중들은 쉽게 동조했다. 하기야 동조하지 않으면 같은 마녀로 취급받았다.

중세유럽에서 수백 년간 허다한 사람들을 상대로 진행된 인간성 말살의 이 마녀사냥은 16~17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의 시대라 불리는 때였으니 아이로니컬하기 짝이 없다 하겠지만, 그로부터 지금까지도 인간사회의 마녀사냥은 그 양상을 바꾸어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우생학을 신봉한 히틀러의 나치가 저지른 유다인 말살시도, 일본 제국주의가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에게 찍은 ‘불령선인’이라는 낙인, 1950년대에 미국에서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 주도해 공산주의자를 색출해낸 ‘매카시 선풍’ 등등, 때와 장소만 바뀔 뿐 마녀사냥은 인간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교실의 ‘왕따’현상도 마찬가지인걸 보면 마녀사냥은 인류의 본능적인 집단심리인 것 같기도 하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인 지금, 인터넷을 통해 나타나는 표현들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마녀사냥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짜뉴스는 혐오뉴스와 증오뉴스가 되기 십상이고 일반 콘텐츠에서도 혐오표현과 증오표현이 넘친다. 이같은 표현들은 중세유럽 마녀사냥 당시의 고문기구와 같은 흉기와 다름없다. 그 자체로 인격살인을 저지르기 일쑤이지만 직접적인 증오범죄로 연결돼 사람들 간에 갈등과 충돌, 폭력을 유발해 지구촌에서는 관련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로힝야 족 탄압사건을 들 수 있다.

로힝야 족은 미얀마 북서부에 거주하는 인구 220만의 소수민족. 국민대다수가 불교를 믿는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다. 지난 2016년 군부는 요원들을 동원해 페이스북에 “이슬람이 불교의 세계적 위협”이라고 주장하거나 “이슬람 남성이 여성 불교 신자를 강간하려 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군부 의도대로 곧 종교 갈등에 미얀마 대중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당국의 탄압이 잇따르자 로힝야 족은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경찰서를 습격하기도 했는데 이에 군부와 불교 극단주의자들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본격적인 탄압에 돌입했다. 로힝야족 1만 명 이상이 살해됐고 마을 392 개가 전소됐으며 70만 명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국제사회는 이 사태를 ‘인종청소’, ‘학살’로 명명했다. 페북이 인종 청소의 전위대가 됐던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가짜뉴스와 혐오·증오 뉴스가 횡행하는 이유는 잘 알려진 대로 이들 미디어가 사용자들이 개인의 취향과 신념에 따라 선택하기 좋도록 제작되는 디지털 미디어 특성 때문이다. 일반 콘텐트는 물론이지만 뉴스조차도 기본 뼈대가 돼야할 객관적 사실과, 사실을 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 같은 미디어 특성은 어느 한 쪽의 진영 논리를 내세우고 상대를 공격하는 데에 적격이다. 어떤 쟁점을 둘러싸고 편이 갈리면,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선’이고 다른 사람은 ‘악’으로 규정하기 마련이다. ‘악’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마녀사냥을 한다.

최근 우리 사회 전체가 열병을 앓았던 이른바 ‘조국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광화문’, 또는 그쪽을 편드는 매체의 주장과 ‘서초동’ 또는 그쪽에 선 매체의 주장은 합리적·과학적으로 비교해 사실을 검증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다.

최근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동문회가 서울 시내에서 열렸는데, 법조를 출입하며 조국 사태를 취재했던 기자가 경험담을 공개했다. “취재원을 만나면 ‘너는 어느 편이나’고 묻는 것을 태도와 표정에서 느낀다.” “최대한 균형 있게 접근해도 독자 개개인의 가치 판단에 따라 ‘악플’이나 항의전화를 막 한다.”

급격하게 변하는 미디어 생태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느꼈지만 그보다는 젊은 후배 기자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앞섰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