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마지막 종지기

홍계숙
입력일 2019-11-12 수정일 2019-11-12 발행일 2019-11-17 제 317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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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9월 29일자 8면 대전 대흥동본당 ‘마지막 종소리’ 기사를 읽고

마지막은 고요히 처음에 닿았네

대전 대흥동 백년 성당, 허름한 걸음이 120칸 가파른 계단을 오르네

종탑에 이르는 좁다란 하늘 길을

라디오 속에 넣어둔 정각을 꺼내어 수많은 정오와 저녁을 타종했던 50년,

세 가닥 밧줄을 번갈아 움켜쥐고 온몸을 실어 지상 깊숙이 가라앉으면 하늘의 입술이 열리던

소리의 표면장력이 부풀어 쏟아지던 은총

풀밭 가득한 초록의 세간으로

제비꽃 귓속으로

삶을 타종하던 가난한 성자의 *빌뱅이 언덕으로

하늘은 그에게 소리새를 날리는 밧줄을 쥐어주었네

고요한 깃으로 도시를 품고

껍데기를 두드려 단단한 것들이 가슴을 열던 허공은 종지기의 고독한 성소

타종은 구슬이 되어

어디론가 굴러간 은총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네

정각의 라디오 속에서 성자가 걸어 나오네 디지털에게 밧줄을 건네고 종탑을 내려올 때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鐘아

가을 햇살 따사롭게 쏟아지고

그가 간절히 매달렸던 허공이 높고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네

*종지기이며 동화작가였던 고(故) 권정생 선생이 살던 탑마을 뒤의 언덕, 그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홍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