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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4. 제3장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10-07 수정일 2019-10-08 발행일 2019-10-13 제 316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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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거나 낙태로 상처입은 이들의 처지에 공감을…”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3장에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를 주제로 위기에 처해 있는 수많은 젊음들을 드러내고, 상처 받은 젊은이들의 시선에 함께한다. 권고는 전쟁과 폭력으로 피해 받는 청소년, 이주민 등 오늘날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 가는 젊은이들을 위로한다. 특히 “임신했거나 낙태의 상처를 입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잊지 말아야 한다”(권고 74항)고 밝힌다. 이번 호에서는 청소년 양육미혼모와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자오나학교’를 통해 권고의 메시지를 상기시켜 본다.

■ 상처투성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의 삶은 고통과 술수에 노출돼 있습니다.(권고 71항)

“아기가 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한 10대 미혼모의 말이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실제 10대 미혼모가 자오나학교 교장 정수경 수녀(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성관계 과정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면서도 왜 아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들이 공유되지만 성(性) 문제에 대해서는 즐거운 놀이, 즉 쾌락의 일종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청소년들은 일찍 어른이 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청소년의 잘못일까?

정 수녀는 자오나학교에 찾아오는 학생들의 가정환경은 거의 비슷하다고 말한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조부모 밑에서 생활한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제때 보살핌을 받지 못해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상처를 더 키울 뿐입니다.”

김미연(가명·23)씨는 부모가 일찍 이혼해 엄마의 얼굴도 기억 못한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해 친척 손에서 컸다. 김씨는 어느 순간 혼자 집을 보기 시작했고, 그때 상황이 비슷한 남자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는 소년원에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주변 지인들과 SNS상 익명의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아기를 지우라는 것이었다.

정 수녀는 “임신한 청소년들이 아기를 낳고 책임감 있게 기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정보가 부족하다”며 “교회는 이런 부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원론적이고 피상적인 가르침으로 접근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위기에 처한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권고 81항)

■ 함께 울어주기

◎누군가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습니까?(권고 76항)

‘자오나학교’의 일상이 담긴 사진들.

김씨는 고민 끝에 아기를 출산했고, 갓난아기와 함께 자오나학교를 찾았다. 자오나학교에서는 김씨에게 가정환경 정도만 확인하고 특별한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 정서적 안정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키우겠다고 결심한 사실 자체에 용기를 북돋아 준다.

정 수녀는 무엇보다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같이 일어나 밥 먹고 놀고 수업하고, 때때로 잔소리도 합니다. 옆에서 함께 있어 주고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인식할 때 점점 마음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아이들도 누군가를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이 돼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일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지만, 어릴 적부터 홀로 자라 온 이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동반한다. 처음 자오나학교에 들어왔을 때 김씨는 그동안 쌓인 상처들로 인해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만큼 감정을 억누르거나 때로는 물불 가리지 않고 터뜨려 버렸다. 순수한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기도 일쑤였다. 그동안의 좌절과 실패, 아픈 기억들, 사랑과 인정 받지 못한다는 느낌에서 오는 상처들의 표현이었다.(권고 83항)

정 수녀와 자오나학교 교사들은 이 과정을 반복해서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리 있게 말을 하고 있는 김씨를 발견했고, 김씨 스스로도 꿈을 꾸기 시작했다. 평소 메이크업에 관심 있었던 김씨는 제대로 공부를 해서 메이크업 강사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수업 시간에 끝까지 앉아 있어 본 경험도 없었던 김씨는 꿈을 가진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현재 장학금까지 받으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김씨는 자오나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법을 배워 대학교에서도 자신이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자랑한다.

“교회의 젊은 자녀들이 겪고 있는 비극 앞에서 우리 교회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는 법을 알게 될 때에, 마음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권고 75~76항)

■ 공동체의 힘

◎여러분이 하나가 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권고 110항)

김씨가 사회에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동체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자오나학교에서는 아기 엄마에게 육아를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공동육아 개념으로, 자신의 아기만이 아니라 다른 아기들도 함께 돌보고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공동구역의 청소 등을 통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법을 가르친다.

정 수녀는 “이곳에서 함께 아기를 돌보고 청소하며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 간다”며 “대부분 혼자 생활했기 때문에 공동생활에 어려움을 많이 겪지만, 결국에는 사회생활도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오나학교에서 2년간의 과정을 거치고 졸업해 사회에 나가면, 또다시 ‘미혼모’라는 편견에 부딪쳐야 한다. 그동안 받은 상처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이 아물어지지만, 사회에 나가 사람들의 편견에 홀로 맞서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밀려온다.

정 수녀는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오나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임대주택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이웃에 무관심하게 되고, 만약 미혼모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바라봅니다. 그냥 이웃의 한 사람으로 편하게 대해 줬으면 합니다. 이 아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관심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정 수녀는 신앙인들의 역할도 강조한다. “나를 위한 개인의 신심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이웃으로 누구를 보내 주셨는지 주변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 주고 함께 울어 주는 것이 우리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생과 봉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희생과 봉사가 물질적 지원이나 큰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과 애정 어린 관심이다.

“여러분이 하나가 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공동체 생활에 열의를 가진다면,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위해 커다란 희생을 할 수 있습니다.”(권고 110항)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