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태풍과 건물 보수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19-09-30 수정일 2019-10-01 발행일 2019-10-06 제 316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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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공간적으로 나뉘어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환경과 생태계는 공간의 제한이 없어 보입니다. 남북 사이 경계에도 불구하고 북한강과 임진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것을 보면 인간만이 경계를 구분하지 자연은 원래부터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에 공간 제한이 없듯이 자연재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이 막혀 있다고 해서 밑에서 올라오던 태풍이 휴전선에서 소멸해 버리거나 위에서 내려오던 비구름이 휴전선 부근에서 멈추는 일은 없습니다.

지난달 들이닥친 제13호 태풍 ‘링링’은 우리나라의 서해안을 지나 황해도를 거쳐 갔습니다.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강한 비바람으로 2차 피해를 주기도 했죠. 이런 현상은 북쪽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자연재해를 통해 남북 사이에 여러 협력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고민하게 합니다.

이번 태풍 ‘링링’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도 피해가 발생했나 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 상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곳에서 만남을 가져서인지 우리에게는 익숙한 공간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중 북측 관할구역의 지붕이 날아가는 등 파손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북한과 유엔군사령부 사이 군통신선을 통해 태풍으로 인한 피해상황 등을 공유했고 그 결과 북쪽에서는 인력 10여 명이 동원돼 유엔군사령부 승인 하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파손된 회의장 지붕 등을 수리했다고 합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속해 있는 3자, 즉 남한, 북한, 유엔군 모두가 협력해 건물 보수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3자 협력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건물 보수 작업을 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건물 보수가 가능했던 것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조치의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9·19 군사합의에 따라 10월 2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초소 9곳(남쪽 4곳, 북쪽 5곳)을 대상으로 모든 화기 및 탄약, 초소 근무를 철수하고 유엔군사령부와 공동검증을 마쳤던 결과가 반영된 것 같습니다.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남북 협력사업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런 점에서 위기를 협력의 기회로 바꾸려는 지혜가 늘 필요해 보입니다. 당면해서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비롯해 ‘말라리아’나 ‘산림병충해’ 문제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도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지혜 6,12)라는 말씀처럼 지혜를 모으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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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