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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학술상, 그 의미와 발자취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9-24 수정일 2019-09-25 발행일 2019-09-29 제 316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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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연구와 교회 학술 발전 위해 투신한 평신도 신학자 故 양한모 선생 뜻 잇고자
22년 동안 꾸준히 다양한 학자들을 시상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한 학술상으로 신학·철학·인문 사회 분야 진흥에 기여
평신도 학자 활동 독려하는 데도 큰 몫

1997년 12월 17일 서울 명동성당 소성당에서 열린 제1회 양한모 기념 가톨릭학술상 시상식.

지난 23년 간 수많은 교계 학자들을 시상, 격려해온 한국가톨릭학술상(이하 가톨릭학술상)이 이제 한국교회의 학술 진흥과 장려를 위해 신자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는 상으로 변모한다.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하고 신자들의 후원으로 시상하게 되는 가톨릭학술상의 제정 취지와 그동안의 역사를 알아본다.

■ 교회 학술활동의 중요성

세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선교사의 도움 없이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학술’이라는 또 다른 선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선조들은 「천주실의」를 비롯한 다양한 교회서적을 스스로 연구했고,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했다. 이런 학술적 연구는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계속됐고, 신앙선조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교요지」 등 각종 서적을 저술하고 번역하고 보급해왔다. 교회 학술은 이렇듯 한국교회가 뿌리내리는데 큰 힘이 됐다.

보편교회에서도 역시 학술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대교회 시절,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교회의 신비를 설명했다. 중세 이후로도 교회의 학술 활동은 교회의 가르침에 담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당대의 사람들에게 설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로마제국 멸망 이후에도 유럽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근대 계몽주의 이후 범람한 무신론적 사상 속에서도 교회 학문은 묵묵히 인문과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교회의 학술활동은 단순히 책상에서 끝나는 지식이 아니라, 시대의 징표를 읽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지식과 삶을 일치시키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교회 학술활동은 다원화된 현대사회를 복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더욱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학문은 신앙과 영성을 깊이 있고 풍요롭게 한다.

제10회 양한모 기념 가톨릭학술상 수상작 한국 가톨릭 대사전 12권.

2006년 10월 12일 열린 제10회 가톨릭학술상에서 교회사연구 관계자와 신자 등 많은 이들이 참석해 가톨릭대사전의 학술상 수상을 함께 축하했다.

2018년 11월 7일 열린 제22회 한국가톨릭학술상 시상식 중 수상자와 관계자들이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 가톨릭학술상 제정 의미

가톨릭학술상은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이끈 우수한 학문적 업적을 우리의 손으로 발굴, 격려하는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한 학술상으로 의미가 깊다.

가톨릭학술상은 1997년 고인의 5주기를 맞아 한국의 대표적 평신도 신학자인 고(故) 양한모(아우구스티노, 1921~1992) 선생의 유족들이 소정의 기금을 출연하고,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함으로써 시작됐다. 가톨릭 신학과 철학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통해 교회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한 연구자를 격려해 양한모 선생의 평소 숙원이었던 신학 연구와 교회의 학술 창달 유지를 위한 지원 육성의 뜻을 잇기 위해서다.

양한모 선생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옥고를 치르는 등 나라와 겨레를 위한 길을 찾다 해방 후 고(故) 장면 박사와 박순천 선생의 측근에서 민주 정치를 구현해나가면서 가톨릭에 귀의했다. 그 후 신학 연구에 깊이 몰두해 「복음과 사회의 교회」, 「신도론」, 「교회와 공산주의」, 「민족 통일과 한국천주교회」 등의 저서를 남기고 1992년 10월 8일 선종했다.

가톨릭학술상은 한국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학술상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학술상이다. 개신교회의 경우 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 차원이나, 교단에서 주는 상, 개별 학회에서 주는 학술상뿐 아니라, 소망교회의 ‘소망학술상’처럼 개별교회가 주는 학술상도 있지만,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아직 학술 진흥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가톨릭학술상은 22년 동안 꾸준하게 국내 가톨릭 학문 발전과 진흥에 큰 기여를 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톨릭학술상의 첫 시상식을 주관했던 최홍길 신부(가톨릭신문사 18대 사장)는 시상식 인사말을 통해 “가톨릭학술상이 교회 최초의 학술상으로 한국교회 신학과 신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철학 등 인문 사회분야 학술 진흥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한모 선생의 배우자이자 한국 1세대 여류시인인 고(故) 홍윤숙(데레사)씨는 1997년 가톨릭학술상 제정 당시 취지문을 통해 “고인의 생전의 숙원이었던 신도신학 및 학술연구 육성의 유지를 받들어 생전에 고인과 연고가 깊었던 가톨릭신문사에 위촉, 가톨릭학술상 제정을 요청하게 됐다”고 밝히고 “이 상이 교회 내 학술발전에 뜻있는 벽돌 한 장이 되기를 또 가톨릭신문사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가톨릭학술상 발자취

가톨릭학술상은 그동안 한국교회 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교회 안팎에서 인정받는 많은 학자들을 시상했다. 그 결과 국내 유일의 학술상이자 가톨릭교회의 권위 있는 학술상으로서 면모를 갖춰 교회 학술 발전에 기여해 나가고 있다.

1997년 ‘양한모 기념 가톨릭학술상’으로 시작한 가톨릭학술상은 2007년 1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교회 전체를 상징하는 상으로서 새 모습을 갖추면서 더욱 발전해왔다. 5회부터는 본상 외에도 젊은 연구자들의 양성과 격려를 위한 ‘연구상’을 추가로 제정해 운영해오고 있다. 13회부터는 공로상을 제정해 그동안 한국교회의 학술발전을 위해 기여해온 이들을 찾아 6차례에 걸쳐 시상했으며, 16회부터는 교회 학술 번역의 기반을 다지고 원서의 연구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번역 부문상을 제정했다.

가톨릭학술상은 그동안 「라틴-한글사전」을 편찬한 전 가톨릭대 고전라틴어연구소 소장 고(故) 허창덕 신부를 시작으로 다양한 학문분야의 학자들을 시상해왔다.

신학 분야에서는 교의신학과 토착화신학 분야에서 뛰어난 역작으로 평가받는 「속 2000년대의 한국교회」를 저술한 심상태 몬시뇰을 비롯해 「신학대전」의 정의채 신부, 「하느님 나라」의 조규만 주교 등이, 철학 분야에서는 「철학과 신의 존재」의 김현태 신부, 「중세 독일 신비사상」의 정달용 신부 등이 상을 받았다. 성경학 분야에서는 「예언자의 법과 정의 개념」의 김건태 신부, 「로마서」의 김영남 신부 등이, 교회사 분야에서는 「천주교전주교구사 I」의 김진소 신부, 「한국천주교회사의 탐구 III」의 고(故) 최석우 몬시뇰 등이 본상의 주인공이 됐다.

수상작이 평신도와 성직자 등의 구분 없이 순수하게 학문적 성과만을 기준으로 선정되기에 가톨릭학술상은 평신도 학자들의 활동을 독려하는 데도 기여해왔다.

2003년 「의학적 인간학」으로 진교훈 교수가, 2010년 「조선후기 사회와 천주교」로 조광 교수가, 2014년 「민주화와 종교」로 강인철 교수가 본상을 수상했고, 연구상, 공로상, 번역상을 포함해 모두 17명의 평신도 학자들이 가톨릭학술상을 받았다.

또한 2006년에는 한국교회사연구소가 12권 완간한 「한국 가톨릭 대사전」이, 2018년에는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이 본상으로 뽑히는 등 개인이 아닌 공동작업 중에서도 한국교회 학술발전에 뛰어난 업적이 된 결과물을 선정하기도 했다.

가톨릭학술상 2회 수상자이자 오랜 시간 가톨릭학술상 운영위원을 역임해온 심상태 몬시뇰은 학술상 제정 20주년 기념 특별좌담을 통해 “가톨릭신문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계 종사자들의 연구 활동을 격려하는 가톨릭학술상을 여러 해 동안 시상해 옴으로써, 이 시대 한국교회의 복음화 활성화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