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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동북아 지정학과 좁은 문 생존전략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9-03 수정일 2019-09-03 발행일 2019-09-08 제 316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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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은 109년 전인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이른바 국치일이었다.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일제는 추축국(樞軸國, 연합국에 대항한 나라)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지만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이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태평양전쟁은 1951년 9월, 패전국 일본을 포함해서 48개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하면서 종식됐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던 당시 한창 진행되고 있던 한국전쟁은 동북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미국 봉쇄전략의 동북아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한국·미국·일본 vs. 북한·소련·중국의 동북아 냉전구도가 완성됐다. 이러한 구도는 소련이 붕괴한 탈냉전 이후 해체되는 듯했지만,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하면서 다시 재현됐다.

그런데 우리의 국익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 중국과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 일본과의 안보 협력 관계 그리고 남북협력 관계 속에서 극대화될 수 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관계는 각 국가들이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지속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우리의 전략이 우리의 동맹인 미국의 전략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해 한일군사보호협정의 연장 불가를 선언한 우리에 대해 미국이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무엇이어야 할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미일 공조는 냉전시기에 비해 그 중요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돼 북한이 적어도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된다면 마치 냉전시기 미국의 바로 뒤편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가 됐을 때 미국이 느꼈던 골치 아픈 상황을 중국에게 강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은 자국의 영향력에서 북한이 이탈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일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면서 이 과정에서 국제정치적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를 획득하려 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북협력 상황을 만드는 것이 현재와 같은 국제정치 질서 전환의 시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이를 추진하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재차 향후 목표와 계획을 수립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강대국들이 기존 질서를 변형하려는 전환의 시기에 나타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게 하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을 찾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자. 과거의 역사도, 직면하고 있는 현재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의 생존전략의 입구는 ‘좁은 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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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