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노년의 인생길 / 박영하

박영하(호세아) 시인
입력일 2019-08-27 수정일 2019-08-27 발행일 2019-09-01 제 316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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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되면 알차게 보내자고 다짐해 본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밀린 일들을 하루에 모두 할 수는 없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간 연락 못 한 친척,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그러나

나는 주말이 되면 아파트의 노인정을 찾아 작은 봉사를 하곤 했다.

노인정에는 팔순 이상인 고령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밀전이나 감자를 쪄서 점심시간이 지난 3~4시경에 방문을 한다.

내가 해 간 음식을 맛있게 남김없이 다 드신다.

“더운 날씨에 전을 부치기가 얼마나 힘든데 해 왔노” 하며 좋아들 하신다.

그런 인연으로 길을 가다가도 나를 알아보며 반겨 주신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 간다.

나도, 너도, 모두 비켜 갈 수 없는 노년의 인생길!

요즈음 100세 시대를 살아내는 분들이 많아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물론 몸 아프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신세만 지지 않는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노인정에도 80세는 다반사, 90세를 넘긴 어르신들도 몇 분 계신다.

“요즘 이 더위를 어떻게 이겨 내세요?” 하고 물으니 “늙어서 일을 안 해도 되니 더운 줄 모른다”고 하신다.

고(故) 박완서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으니 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어도 누가 뭐랄 사람 없고,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많아 마음을 들볶지 않으니, 세상 이처럼 편할 수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물 흐르듯 그저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

생각나지도 않는 일을 굳이 해낼 것도 없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좋고 얼마나 편한 삶인가, 늙어 가는 일이….

주위에 눈에 들어오던 몇 분이 안 보인다. 여쭤보니까 한 분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두 분은 요양병원에 가셨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을 못 이기시고 병이 나신 게다.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 들어보니 육십이 다 되었는데도 장가를 가지 않은 아들 두 명을 구순의 노인이 끼니를 챙겨 주신다고 한다.

부모라면 자식들이 장성을 해 시집 장가가서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기를 누구나 원할 것이다.

결혼을 해도 아기들을 안 낳고 자신들만 즐기며 살겠다는 젊은 부부들의 현실이 만연하다.

이웃나라를 닮아 가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 앞서는 것 같아 왠지 걱정이 앞선다.

한쪽에서 병문안을 가자는 분, 안 간다고 하시는 분들로 의견이 갈리었다.

“함께 지낸 시간들이 있었는데 건강이 허락되면 가 보셔야죠. 마지막 길이 될 수도 있는데요”라고 말씀드렸다. 연세 든 어르신들은 하루하루를 기약할 수 없다. 오늘 밝고 건강한 모습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 내가 해 온 간식거리를 맛있게 드신 것만 해도 나의 주말 하루는 깃털처럼 가볍게 하늘을 날 것만 같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영하(호세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