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이제는 마리아처럼 / 김신연

김신연(실비아)수필가
입력일 2019-08-20 수정일 2019-08-20 발행일 2019-08-25 제 315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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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정년을 하였다. 평생을 마르타처럼 살았으니 이제는 마리아처럼 살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매일 미사 참례, 피정 참가, 성지 순례, 영성에 관한 책 읽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주보를 보면 나를 부르는 프로그램이 많다. 매달 첫 토요일이 되면 즐거운 고민을 한다. 성모 신심 미사를 어디로 갈까? 예수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가르멜 수도회?

“저는 그분, 예수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제 모든 행위가 그 앎을 향한 여행입니다.” 조각가 장동호의 작가 노트를 읽고 ‘봄빛과 십자가’를 보러 갔다. 단순하고 명징하고 군더더기 없게 예수님을 표현한 작품 앞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갤러리를 나와 서울 효창동을 걷는데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도원이 보였다. 들어가 기도를 바쳤다. “예수님, 저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

부활절에는 1박2일 피정에 참가하였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부활의 밤을 보냈다.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수사님들과 그레고리오 성가 연습을 하고, 부활성야 미사에 참례하였다. 부활 축하 파티를 하고, 부활 달걀과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 새벽에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막달레나처럼 기쁜 마음으로 정원을 산책하였다.

한국가톨릭문인회에서 가는 성지 순례에 참가하였다. 소나무밭 사이로 조성된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이 무덤에서 뚜벅뚜벅 내게 걸어 나오는듯한 착각이 드는 뻥 뚫린 예수님 상을 만났다. 돌로 지어진 아름다운 매듭 경당에 들어갔다. 매듭을 한없이 풀고 계시는 성모님이 계셨다. 나도 풀어야 할 매듭이 있는지 묵상하였다.

예수회 신부님을 모시고 이스라엘·요르단 성지 순례를 갔다. 포도주의 첫 기적이 일어난 카나를 순례하고 나자렛의 성모영보대성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신부님이 주례 신부가 되어 깜짝 혼인 갱신식을 하였다. 신부님께서 카나 혼인잔치 기념 성당의 ‘혼인 갱신 증명서’를 구입하셨나 보다. “이것을 보는 모든 이에게 이 한 쌍의 부부가 이 성지에서 자신들의 혼인을 갱신했음을 굳게 증언합니다.” 문구를 읽고서 나누어 주었다. 요르단 강가에서는 축성을 한 요르단 강물로 세례 갱신식을 하였다.

예수회 후원회의 금요 침묵 피정에 참가하고 있다. 주마다 다른 피정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듣고 묵상을 하는데, 어느 날 옆 사람이 나를 쿡 찔렀다. “코 고는 소리를 냈어요.” 엥? 전날 밤에 겟세마니 첫 목요일 성시간 기도회에 갔다가, 오늘 새벽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 미사 참례와 기도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걸어서 예수회로 이동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나보다. 어쩔 줄 몰라 미안해하는 내게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라고 한다. 그 뒤부터는 눈을 뜨고 묵상을 한다.

미사 올릴 때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제단에 내려온다고 한다. 카푸친 재속회 자매가 ‘성체를 영하고, 30분 이상씩 성체 앞에 앉아있으면 전대사 은총이 주어지고, 예수님이 가슴으로 들어와서 말씀을 하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나도 매일 두 시간씩 성체 앞에 앉아있다. 편안하다. 기쁘다. “주님, 제 가슴 속에 오소서! 한 말씀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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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연(실비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