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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협력을 위한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8-20 수정일 2019-08-20 발행일 2019-08-25 제 315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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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은 우리 교회에서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광복절이었다. 일본의 경제전쟁이 시작되고 처음 맞는 광복절이었기에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모였다. 대통령 경축사는 김기림의 시에서 인용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맥락에서 북한과 관련해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그 이전의 상황과 분명하게 달라졌으며, 북미 간의 실무 협상이 모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불만이 있다면 그 역시 대화의 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할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한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조평통 대변인 담화문을 통해 한미군사연습과 국방중기계획은 북한을 궤멸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미합동연습이 끝나면 대화국면이 찾아올 것이란 기대는 남한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막말과 조롱에 가까운 조평통 대변인 담화와 더불어 한 달 새 여섯 번째 단거리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했다.

이러한 상황은 남북 협력에 심각한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한 조평통 대변인의 담화는 매우 무례하고 불쾌한 내용인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의 강도가 상당하다는 것과 따라서 북미 관계 개선에 더욱 집중하려는 북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북미 관계 개선은 단순히 북한과 미국만의 관계 개선이 아니다. 이에는 우리도, 중국도 당사자에 준하는 위치에서 연관된다. 실제 갑작스럽게 성사된 판문점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는 항상 한미, 북중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있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진행되는 북미 관계 개선은 북중 동맹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다면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도록 더욱 촉진할 수도 있을 것이며, 결국 남북한이 주변국들로부터 느끼는 안보 위협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반면에 남북 협력의 강화는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남북한이 독자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협력은 전술적 선택지가 아니라 남북한 모두에게 전략적 지향이 돼야 한다. 따라서 경축사의 내용처럼 만일 불만이 있다면 그조차도 대화의 장에서 논의하면서 협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평화 구축을 위한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지혜는 무기보다 낫다”(코헬 9,18)는 말씀을 마음속 깊이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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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