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이야기

[우리 이웃 이야기] 시각장애인선교회 봉사자 박근향씨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07-09 수정일 2019-07-09 발행일 2019-07-14 제 3153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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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기쁨에 아픔마저 즐기죠”
생사 넘나든 고비만 두 번
늦기전에 봉사하는 삶 결심
15년째 봉사자로 활동 중

시각장애인들을 ‘식구들’이라 말하는 박근향씨는 “15년의 시간에 걸쳐 우리 식구들의 성향을 다 알았으니 앞으로도 오래오래 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제게 맞는 봉사를 달라고 1년을 기도했어요. 시각장애인선교회 봉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15년 동안 교구 시각장애인선교회(회장 유양재, 지도 박태웅 신부) 봉사자로 활동해 온 박근향(아녜스·67·제1대리구 조원동주교좌본당)씨는 30대에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이 있다. 40대에는 C형간염에 걸리면서 또 한 번 생사를 넘나들었다.

다행히 주님의 은총으로 건강을 조금씩 회복한 그는 더 늦기 전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봉사도 책임이기에 섣불리 시작할 수 없었다.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왔다. 울뜨레야 회합에서 그날 처음 만난 본당 교우에게 대뜸 “자매님, 저랑 같이 봉사하실래요?”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 교우의 제안이 바로 시각장애인선교회 봉사였던 것. 박씨는 그 자리에서 선뜻 답할 수 없어 일주일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내 몸도 건강하지 않은데 장애인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한 달에 두 번이니 일단 시작해보자.’

첫날 봉사는 장애인체육대회였다.

“하필이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 장애인들을 데리고 비바람을 피해 있었어요. 그런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행복한 거예요. 그 순간 ‘이 봉사를 하면 오히려 내가 여기서 도움을 받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월 2회 모임 중 첫째 주는 산행, 셋째 주는 미사와 회합, 식사를 했다.

산행을 다녀오면 몸이 아파 늘 병원행이었다. 보다 못한 남편은 “당신이 봉사를 받아야 할 몸인데 무슨 봉사냐”고 했지만, 박씨는 “내가 견디다 견디다 못 견디면 스스로 그만 두겠다”라며 봉사를 고집했다. 그렇게 15년 동안 아픔까지도 즐기면서 봉사하다보니 지금은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홀시어머니, 홀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종갓집 종부로 살다보니 저만 힘들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장애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니 나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닌, 행복에 겨운 비명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역 연령회장과 본당 구역장도 맡고 있는 박씨는 장애인 봉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호소한다.

“시각장애인분들은 때로는 가족보다 봉사자가 더 편하다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늘 봉사자가 부족합니다. 본당에서도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신자 모두가 봉사자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시각장애인들은 목소리만 듣고 상대방을 파악해야 하기에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을 열면 누구보다도 진솔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박씨는 또 교구 내에 시각장애인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생활할 수 있는 요양시설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