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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RTB(모기지로 복귀하라)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07-02 수정일 2019-07-02 발행일 2019-07-07 제 315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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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B(Return To Base)! ‘모기지로 복귀하라’는 항공관제 용어입니다. 조종사들은 부여된 임무를 완료하면 무선을 통해 ‘알티비’(RTB)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긴장 속에서 고난이도의 임무를 마쳤을 때, 모기지로 복귀하라는 이 말은 폭염에 내리는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을 줍니다. 그리고 ‘오늘도 무사히 임무를 마쳤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합니다.

2018년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선정한 키워드 중에 ‘케렌시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매일매일의 전투에서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안식처로서 케렌시아 같은 공간이 절실하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합니다. 원래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 본능, 안식처 등을 뜻합니다. 투우 경기에서 투우사와 싸움 중인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이릅니다. 케렌시아에서 사람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전장으로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항공인들에게 케렌시아와 비슷한 장소가 바로 Base(모기지)입니다. 따라서 Base라는 말만 들어도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항공기는 이곳에서 탄약과 연료를 재보급 받으며, 세부적인 점검을 실시하고 고장난 부분은 정비를 받습니다. 또한 조종사들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출격할 힘을 얻고, 필요한 정보를 얻습니다. 항공기와 조종사에게 있어 모기지는 마치 어머니 품과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제 친구 중에는 모기지로 복귀하지 못하고 불의의 객(客)이 된 조종사가 있습니다. 2011년 2월 23일 오후 8시경, 응급환자후송을 위해 제주국제공항에서 한 대의 헬기가 검은 하늘을 향해 비상했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혼동할 만큼 깜깜한 밤, 공해상에 위치한 해양경찰 경비함에 착륙해 환자를 싣고 곧바로 이륙했습니다. 그러나 이륙 직후 “환자를 싣고 출발한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헬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사고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체결함은 없었으며 이륙하자마자 해무(海霧)와 조우했고 조종사가 비행착각을 일으켜 헬기가 자세를 잃고 추락했다’고 했습니다. 안락함을 주는 모기지로 영원히 복귀할 수 없게 된 것이죠. 더욱이 차디찬 바다에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기에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날이 저물면 새들도 둥지를 찾아들 듯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희망이자 행복입니다. 모기지와 케렌시아는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면 영혼의 안식처는 어디일까요. 신앙이 곧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삶의 피곤함, 억울함, 허망함에 대한 위안을 얻고 전장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하느님의 품속은 어머니에게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안락함이 있습니다.

RTB(Return To Base)! 우리 모두 모기지로 복귀합시다.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