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국내 북한이탈주민 3만여 명… 교회가 할 일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9-06-18 수정일 2019-06-18 발행일 2019-06-23 제 3150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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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월 25일) 기획
“편견의 벽 허물고 ‘동무’가 돼 주세요”
비슷한 외모 같은 말 써도 마음의 거리 좁히지 못해
우리가 그들 아픔 받아들여야

현재 한국에 정착해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3만2000여 명.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1730여 명(올해 3월 기준)이 해마다 북한을 이탈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특히 2006년 이래로 입국자들 중 여성이 80%정도를 차지한다. 이처럼 국내에서 생활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그들을 정신적으로 포용하기 위한 교회 안팎의 움직임은 더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열린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와 새천년복음화연구소의 학술회의에서는 “통일사목이 ‘정착 지원’에만 머물러 있어 북한이탈주민을 정신적으로 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고 그들에게 한 발 먼저 다가서야 할 때임을 뜻한다.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벽’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 다니는 김아녜스(24·가명)씨는 “제가 북한에서 온 사실을 알면 한국 학생들과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한국 학생들이 상처를 줄까 걱정돼 배려하는 차원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에서 온 또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면 이런 경험들이 공통적으로 있었다. 이해는 하지만 상처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온 김씨가 그럼에도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이하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는 ‘어울림쉼터’ 덕분이다. 탈북하기 직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그에게 박신영 수녀(어울림센터장)는 새로운 ‘엄마’다. 그는 박 수녀의 도움으로 북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어려움을 하나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녀회는 2011년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을 장기적으로 보살피기 위해 어울림쉼터를 마련했으며, 올해 3월에는 대상을 확장해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지원은 물론 상담, 일자리 주선, 반찬 나눔, 학습지도 등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어울림센터를 개소했다.

현재 센터에서 지내는 고등학생 이수진(21·가명)양도 박 수녀의 도움으로 두 달 만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양은 북한에서 가발 공장에 다니며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학력을 갖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공부하는 것보다 장사해서 먹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 고등학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깜깜한 추운 밤, 허리까지 뒤덮인 눈을 헤치며 한국을 찾은 이양이 한국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관심’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신기한지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자기들끼리 어울려요. 같은 말을 쓰는데도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저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아쉬워요.” 이양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성당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이탈주민 사목을 해온 박 수녀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이들이 힘들 때 찾아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돌아갈 수 있는 고향과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교회가 이들의 ‘언니’이자 ‘엄마’ 그리고 ‘동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수녀가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이들과의 ‘관계 맺기’다. 이들이 힘들 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돼주고 싶기 때문이다. “힘들 때 와서 편하게 밥 한 끼 먹고 가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북한이탈주민의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그들과 얘기하다 보면 100명 중 98명은 아픔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면 그들은 내면의 아픔을 내놓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의 동무가 되면 안 될까요?”

※후원 문의 010-7919-7407 어울림센터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