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오늘이 기적이고 축복이다 / 김병호

김병호 (베드로) 수필가
입력일 2018-11-06 수정일 2018-11-06 발행일 2018-11-11 제 311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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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었다. 오전 6시쯤 눈을 뜨면 침실은 깜깜하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불을 켜지 않고 십자가를 향해 합장하고 묵언의 ‘아침 기도’를 바친다. 아침 기도는 하루를 경건하게 하고 은혜롭게 한다.

거실로 나와 아침상을 차린다. 시골로 온지 15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아침상은 내가 차리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침과 저녁은 아내가 해준 밥을 먹었지만, 점심은 회사에서 해결했다.

지금 직장생활을 마치고 삼시 세끼를 모두 집에서 먹으면서도 “삼식이 새끼” 소리를 듣지 않고 있는 것은, 그동안 객지를 따라다니며 고생한 아침잠 많은 아내를 대신해 이제는 내가 조식담당을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침식사의 차림표부터 바꿨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린다는 것은 부엌일에 서툰 내겐 무리다 싶어 상차림을 ‘개량밥상’으로 바꿨다. 냉동블루베리에 청국장가루와 울금 가루를 넣고, 거기에 요구르트를 부어서 만든 죽 한 공기. 제철 과일인 사과나 토마토 반 개, 일주일 치를 미리 삶아놓고 매일 한 알씩 꺼내 먹는 달걀.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 한 줌, 식빵 한 쪽이나 떡. 이것이 개량밥상의 메뉴다.

개량밥상의 장점은 정말 많다. 식재료만 준비돼 있으면 15분 이내에 차릴 수 있다. 군대용 식판에 담아낼 수 있으니 간편하다. 영양적으로도 균형 잡힌 음식이고, 아침식사로도 위장에 부담이 적다. 설거지도 5분이면 끝난다. 조식으로는 최고의 식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상을 차려놓고 서재로 와서 친구 200명에게 10년 넘게 보내고 있는 이메일을 보낸다. 이메일 보내기가 끝날 때쯤이면 아내가 서재로 와서 “잘 잤어요?” 하고 인사를 하겠지만,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면 침실로 가서 아침을 먹자고 아내를 깨운다.

아침을 먹기 전에는 ‘하루를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와 ‘식사 전 기도’를 한다.

‘하루를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는 내가 만든 기도문이다.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신 이 시간/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과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주님, 부족한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병마와 재난으로부터 지켜주소서.

모든 것에 긍정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고/ 많은 사람을 사랑하여/ 저희가 살아서 천국을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저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많은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아픈 이들을 낫게 하여 주소서. 아멘.

아침을 먹고 창밖을 보니, 날은 맑고 하늘은 높다. 오늘이 있음이 기적이고 우리의 삶이 축복이다.

김병호 (베드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