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동표 화백, ‘달에 비친’ 주제로 작품 선보여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10-30 20:01:46 수정일 2018-10-30 22:22:14 발행일 2018-11-04 제 3118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보름달 속에서 둥글둥글 하나된 남북가족
12월 2일까지 서울 김종영미술관
역사화로도 가치 높은 작품 다양

“달에 비친 건….”

덤덤하게 그림을 설명하던 노(老)작가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작가는 먼 곳을 바라보다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야 말을 이어갔다.

“북쪽에 살아 있는 가족을 그려달라고 하데. 어머니는 진즉에 돌아가셨으니, 아우는 살아있지 않을까 해서 그려봤어.”

‘실향민’ 서양화가 이동표(요한 세례자·86·사진) 화백의 ‘달에 비친 아우’는 보름달에 아우의 얼굴을 그려 넣은 그림이다. 그의 그림에서 달은 고향을 의미한다. 달에는 ‘형제필생’(兄弟必生)이라고 적혀 있다.

“추석이 돼 보름달이 뜨면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워졌어. 달을 통해 가족을 바라본 거지. 북쪽에서도 달을 통해 나를 볼 거 아니야.”

이동표 화백의 ‘달에 비친 아우’.

황해도 해주 빈농의 아들이었지만, 재능을 알아본 담임교사의 권유로 16살에 해주예술학교 미술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2년 뒤 발발한 6·25전쟁은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던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인민군에 입대한 뒤 월남하고, 수용소 생활 등을 겪고 나서야 붓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다양한 풍경과 소재를 넘나들다 예순 즈음부터 어머니를 그렸다. 그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는, 사진 한 장 없는 어머니였다. 이후 작업 화두는 전쟁, 통일, 고향으로 옮겨갔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사미루에서 12월 2일까지 열리는 그의 초대전 ‘달에 비친’에서는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을 선보인다.

‘통일이다. 고향가자’시리즈를 비롯해 ‘꿈에 본 내고향’, ‘이 땅의 평화를’ 등 투박한 필선과 강렬한 색, 두꺼운 질감으로 표현한 유화, 아크릴화 등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일흔, 여든을 넘기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그의 최근 그림들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귀향을 바라는 깊은 염원을 보여준다. 그림에는 ‘고향에 가고 싶다’, ‘북핵 인류의 재앙을 보는가’ 등의 직설적인 글귀도 등장한다. 적나라한 표현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역사화’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 1층 ‘한국전쟁 기념 전시관’에는 그의 그림 ‘기억하라! 6·25 장진호 동계전투’ 등 4점이 걸려 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도 3점이 전시돼 있다.

그는 최근 남북관계 봄바람에 대해 “기쁘긴 하지만 평화가 올 듯 올 듯 망가진 적이 많아 조심스럽다”면서도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월남 이후 혈혈단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신앙’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신앙의 힘으로 살아왔다”며 “신앙은 체질”이라고 말하는 그는 서울 가톨릭미술가회 창립 회원으로 교회미술 발전에 기여해왔다. 현재 한국 103위 성인 중 개별 초상화가 없는 63위 성인의 초상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초대전에서는 ‘병상의 어머니’를 비롯해 ‘어머니의 모습’, ‘엄마의 참모습’ 등 다양한 어머니상도 만날 수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매년 가을, 원로작가 초대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은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우리 삶, 역사와 밀착된 작업을 성실히 하는 점을 높이 사 이 화백의 작업을 소개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