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64) 스페인 오비에도의 ‘산 미겔 데 리요 성당과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궁전’

정웅모 신부(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유물 담당) rn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입력일 2018-07-17 수정일 2018-07-17 발행일 2018-07-22 제 3104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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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세월이 온전히 숨쉬는 곳… 군더더기는 없었다
아치형 문·밧줄 모양이 특징인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 건축물 
원형의 1/3 남았지만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 미겔 성당’
두 건물 주변 작은 안내 표지판만 있을 뿐 부속 건물 등 없어

산 미겔 데 리요 성당.

스페인 북부의 오비에도(Oviedo)는 해발 232m에 있는데, 인구는 20여 만 명 규모의 도시다. 이 도시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한다. 비옥한 대지에서 풍부한 곡물이 생산되며 아스투리아스의 주도이자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산 살바도르 대성당’(Cathedral de San Salvedor)은 13~18세기에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모습으로 건립됐다. 성당 내부에는 뛰어난 성화, 역대 아스투리아스 왕들의 묘와 유물도 함께 소장돼 있다. 대성당 뒤에 자리한 옛 수도원에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는 오비에도의 선사 시대와 로마 시대, 로마네스크 시대의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오비에도 주변에서는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양식은 8-10세기에 번성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791-842)는 이 도시를 침략한 이슬람교도들을 격퇴한 후 도시의 재건과 확장을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유럽이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때에도 8세기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프레-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알려진 독특한 건축을 선보였다. 이 양식의 특징으로는 주로 직선으로 구성된 외관과 로마식 아치, 반원형의 둥근 천장을 꼽을 수 있다.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은 오비에도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3㎞ 떨어진 나랑코(Naranco) 산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두 개의 작은 건물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다. 하나는 ‘산 미겔 데 리요 성당’(San Miguel de Lillo)이고 다른 하나는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궁전’(Palacio de Santa Maria del Naranco)이다. 모두 라미로 1세(Ramiro I, 842-850) 때 건축됐는데 아스투리아스 예술의 정수를 보여 준다.

산 미겔 성당은 848년에 건립됐다. 원래의 모습은 11~12세기에 무너지고 오늘날에는 성당 입구가 있는 서쪽 부분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원래 성당의 1/3에 불과하다. 비록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이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남은 건물만으로도 원래의 성당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궁전.

산 미겔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궁전이 있다. 9세기에 라미로 1세가 여름을 지내기 위해 지은 2층 별장형 궁전이다. 아치형 문 양식과 함께 기둥에 밧줄 모양의 장식은 프레-로마네스크 양식을 잘 보여 준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산타 마리아 궁전의 외형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매우 단순하지만, 간결하면서도 우아하다. 황금비율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건물 앞쪽의 트인 회랑에서는 야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이곳을 통해 빛이 풍부하게 들어와 실내를 밝혀준다. 궁전의 규모는 작지만 웅장한 느낌을 주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산타 마리아 궁전은 나랑코 산 위에 건립됐지만 후에 스페인과 유럽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 미겔 성당과 산타 마리아 궁전이 건립된 지 1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처럼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물이 돋보이도록 나무와 잡초를 제거하고 주변만 정비했을 뿐이다. 건물 주변에는 작은 안내 표지판만 있을 뿐 이곳을 관리하기 위한 부속 건물이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두 건물의 내부는 특별한 시간에 개방하면서 건물을 잘 보존하고 있다. 외부 정원은 언제나 개방돼 있어서 사람들이 건물과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다. 외부를 크게 장식하지 않았는데도 단조롭지 않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궁전 2층 회랑.

산 미겔 성당과 산타 마리아 궁전처럼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튼튼한 건물을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건물을 잘 보존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나아가 그처럼 소중한 건물을 잘 활용하며 후대에 까지 물려주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소중한 유산이나 유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잘 보존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 주변에 지은 부속 건물이 원형을 가리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유산 가까이에 편의시설 등을 빼곡히 지으면 유산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생명력을 잃게 된다.

유산의 원형은 사라지고 둘레에 어지러운 건물만 남아 있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능하면 유산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건물 주변을 비어 둠으로써 그것이 돋보이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유산 보존 뿐 아니라 성당이나 성지의 성물도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적절하게 배치돼야 한다. 때로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성상이나 성화가 놓여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지나친 것보다는 조금 부족한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이 말은 교회에서 성상이나 성화를 설치할 때도 해당된다.

이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물려준 보물 같은 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됐다. 나랑코 산에 있는 산 미겔 성당이나 산타 마리아 궁전을 보면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정웅모 신부(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유물 담당) rn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