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은이성지(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3-27 수정일 2018-03-27 발행일 2018-04-01 제 308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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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가 신앙생활한 곳
골배마실성지와 함께 성역화

은이성지 성당. 오른쪽으로 김대건 기념관이 보인다.

용인시 처인구의 은이로를 따라 오르니 잔디밭 위에 새하얗게 우뚝 선 건물이 나타났다. 성당은 중국식 건축에 ‘天主堂’(천주당)이라는 문구가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성당 옆에는 한옥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김대건 성인의 세례터이자 성인의 성품성사를 기념하는 은이성지다.

골배마실성지가 김대건 성인이 생활하던 곳이었다면, 공소가 있던 은이는 성인이 신앙생활을 한 대표적인 성지다. 골배마실성지에서 은이성지까지의 직선거리는 불과 1㎞ 가량이다. 아마 선조들은 산을 넘어 도보로 이동했겠지만, 지금은 도로를 따라 4㎞ 가까이 돌아서 이동해야 한다.

교구는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인 1996년을 맞아 순교기념관 건립을 기획했고, 여러 후보지 중 은이공소 터를 선정했다. 1998년에는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러던 중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진자샹(金家巷)성당이 철거됐고, 교구는 진자샹성당을 은이성지에 복원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따라 기존에 결성한 위원회를 ‘은이 성 김대건 신부 현양위원회’로 개편했다.

김대건 기념관 전경.

골배마실성지 개발을 계기로 함께 개발된 은이성지는 골배마실성지와 함께 개발됐다. 2003년 안병선 신부가 은이·골배마실성지 전담으로 임명되면서 성지개발이 본격화됐다.

성지는 기념관 건립과 진자샹성당 복원 등 외적인 성지개발을 준비하면서, 순교신심을 전하는 내적인 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김대건 성인과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전하는 작업에 힘을 쏟았다.

성지는 2005년 제1회 대건 신앙캠프를 시작으로 해마다 청소년들을 위한 캠프를 열었다. 성지의 캠프는 스키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순교신심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이 피정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인기를 끌었다.

성지는 이밖에도 해마다 순교자 현양대회를 열고 은이와 골배마실, 미리내성지를 잇는 도보성지순례코스를 개발해 순례자들이 순교신심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성지 부지를 활용해 대건가을축제한마당, 은이골 대건제 등의 축제를 열기도 했다.

내적인 성지개발이 탄탄히 이뤄진 반면 외적인 성지개발에는 난항을 겪기도 했다. 성지로 선포되기는 했지만 교통·환경 영향평가 등의 이유로 성당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김대건 성인이 세례를 받았던 은이공소의 터 자리에 공장이 자리하고 있어 성역화 작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성지개발의 본래 계획이었던 기념관과 진자샹성당 복원은 10여 년 이상 지연됐다. 현재 만날 수 있는 새하얀 성지성당이 완공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